중국고사성어

사석위호(射石爲虎)

射:쏠 사. 石:돌 석. 爲:할 위. 虎:범 호

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말로, 성심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다는 뜻.

이광은 양가의 자제로서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궁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신체가 장대하고 원숭이처럼 팔이 길었다. 그가 활쏘기에 능한 것도 선천적인 것으로서, 그의 자손이나 남들이 아무리 궁술을 배워도 이광에게 미치지는 못하였다. 이광은 말재주가 없었으며 말수도 적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땅에 줄을 그어 진형을 그리거나 활을 쏘아 원근을 비교하여 지는 자에게 벌주를 먹였다. 그의 활 쏘는 법은 적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수십보 이내라도 활시위 소리와 동시에 적이 쓰러졌다. 그래서 그는 병사를 거느리고 작전을 수행할 때 자주 곤경에 빠져 고생하였으며, 맹수를 쏘는 경우에도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오로지 활쏘기를 낙으로 삼아 일생을 마쳤다. 그리고 이광은 청렴하여 상을 받으면 항상 그의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음식은 병졸들과 같은 것을 먹었다. 이에 병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일찍이 농서, 북지, 안문, 대군, 운중의 태수를 지냈는데, 어느 곳에서나 용감히 전투에 임하여 명성을 드높였다. 이광은 특히 흉노와의 싸움에서 남다른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흉노의 선우와의 싸움에서 많은 부하를 잃고 적에게 생포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기도 하였다. 이때 형리는 그를 참수형에 해당하는 죄인으로 판결을 내렸는데, 속죄금을 내고 평민이 되었다. 이광은 그후로 몇 년 동안이나 집에 은거하며 사냥을 하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흉노가 다시 침입하여 요서군의 태수를 죽이고 한안국 장군을 격파하였다. 그리하여 천자는 이광을 다시 불러들여 우북평군 태수로 임명하였다. 이광이 우북평군에 부임하자 흉노는 이 소식을 듣고 한나라의 '비장군'이라고 부르며 수년 동안 감히 우북평군을 침입하지 못하였다.

어느 날, 이광이 사냥하러 갔다가 풀 속의 돌을 호랑이로 보고 화살을 쏘았더니 명중하여 화살촉이 깊숙이 박혔는데(射石爲虎),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쏘아 보았으나 끝내 화살촉은 다시 박혀 들어가지 않았다. 이광은 부임한 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친히 나가 쏘아 잡았다.

[출전]《史記》《이광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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