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사성어

조로지위(朝露之危)

朝:아침 조. 露:이슬 로. 之:어조사 지. 危:위태로울 위

아침 이슬처럼 매우 위험함. 생명이나 지위가 아주 불확실하여 매위 위급한 상태에 있음을 말함

공손앙(公孫앙:상앙)은 전국 시대 위(衛)나라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형사 법령(刑事法令)를 연구했으며, 성장하여 위(魏)나라의 재상 공숙좌(公叔座)를 섬겨, 그 재간을 높이 인정 받았다. 그 후 중병에 걸린 공숙좌는 위나라의 혜왕(惠王)에게 진언했다.

"상앙은 드물게 보는 인재니, 중용하여 정무를 맡겨야 합니다. 만일 상앙을 등용하지 않으시겠다면 죽여 버리십시오. 결코 남의 나라에 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왕이 나간 뒤에 그는 상앙을 불러 왕과의 대화를 전하고, 어서 달아나라고 권했다.

"왕은 어차피 재상의 말을 안 들을 겁니다."

상앙은 이렇게 말하며 웃고는 출국하지 않았다. 과연 왕은 그를 체포하지 않았고, 의지하던 공숙좌도 작고했다. 마침 진(秦)나라의 효공(孝公)이 인재를 찾고 있다는 말을 듣고, 진나라에 갔다.

효공을 세 번 알현한 상앙은 세 번째 알현 때 법 개정의 필요를 설득해 그의 마음을 끌었다. 효공은 그를 좌서장(左庶長)으로 등용해 실행시키기로 했다.

상앙은 백성이 신용하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법령 공포에 앞서 도성의 남문에 막대기를 세우고, '북문으로 옮기면 10금을 주겠노라'고 고시했다. 이른바 이목지신(移木之信)의 故事다. 새 법을 시행한지 10년, 진나라는 부강해지고 군대는 강해졌다. 상앙은 상(商)과 어(於) 땅을 하사받아 상군(商君)이라 불리게 되었지만, 법의 엄정한 적용 때문에 귀족이나 대신의 원망을 샀다.

어느 때 조양(趙良)이라는 사람이 상앙에게 충고했다.

"당신은 지금 아침이슬처럼 위험합니다(朝露之危). 이대로 가다간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쭐해진 그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 기원전 338년 효공이 죽고 태자가 즉위했다. 혜문왕(惠文王)이다. 상앙에게 불만이 있던 대신들은 "상앙에게 모반할 마음이 있다"고 왕에게 무고했다. 그는 위(魏)나라로 달아났다. 하지만 진나라를 두려워하는 위나라는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진나라로 되돌아간 그는 체포되어 죽었다.

[출전]《史記》《商君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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