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간염

간에는 여러 가지 질환이 생길 수 있는데, 그중 가장 흔하고 중요한 것은 만성간염, 간경변증, 간암입니다. 만성간염은 간의 염증 및 간세포 괴사가 6개월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말하는데, 간염바이러스, 알코올, 약물, 자가면역(自家免疫), 대사(代謝)질환 등 여러 가지 다양한 원인들에 의해서 초래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간염바이러스는 A형, B형, C형, D형, E형, G형 등인데, 이들 각각은 마치 동물원의 사자와 원숭이처럼 서로 전혀 다른 바이러스들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A형, B형, C형이며, 이중 만성간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것은 B형과 C형입니다.

A형 간염바이러스는 급성간염을 일으킬 수 있으나 만성으로 이행하지 않으며, 일단 A형간염에서 회복되면 후유증이 남지 않고 평생면역을 얻게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만성간염이 B형 간염바이러스에 의한 경우가 50% 정도, C형 간염바이러스에 의한 경우가 25% 정도, 기타 원인이 25% 정도로서, B형 및 C형을 합치면 간염바이러스에 의한 경우가 70-80%에 달하고, 알코올을 포함한 기타 원인들이 나머지를 차지합니다.

만성간염은 가벼울 경우에는 진행이 완만하지만, 심할 경우에는 반복적인 염증의 결과로 간이 우둘두둘해져서 간경변증으로 진행합니다. 간 생검(生檢)을 하여 간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는 것을 '조직학적 검사'라고 하는데, 조직학적 검사상 염증 소견이 가벼운 경우를 만성지속성간염, 심한 경우를 만성활동성간염 등으로 분류합니다. 과거에는 만성지속성간염이면 간경변증으로 이행하지 않고 평생 예후가 좋은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조직학적 소견이란 어느 시점에서 간염의 활성도를 보여주는 것이고, 간질환의 장차 예후를 정확히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는 특히 바이러스성 만성간염에서 그러합니다. 따라서 어느 시점에서 만성지속성간염이라 하더라도 병의 경과 중 활동성간염으로 될 수도 있고, 간경변증으로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혹시 만성간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경우 자신의 병이 어떠한 원인에 기인한 것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의 원인에 따라 병의 경과, 예후, 치료 방침, 예방 등이 다르며, 바이러스성 간염도 B형과 C형이 서로 병의 진행이나 예후가 다릅니다. 따라서 현재 만성간염은 일차적으로 병의 원인에 따라 만성B형간염, 만성C형간염 등으로 분류하고, 간조직검사를 시행했을 경우 여기에 부가하여 염증 소견은 어느 정도고, 섬유화의 정도는 어떻다 하는 식으로 진단을 붙이고 있습니다. B형 및 C형 만성간염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알코올에 의한 만성간염은 알코올성 간질환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만성간염의 치료에 대해서는 '만성간질환의 치료'에서 언급하겠습니다.

만성B형간염

B형 간염바이러스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간염바이러스입니다. 우리 나라가 속해 있는 동아시아, 중국,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이 B형 간염바이러스의 만연 지역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개 인구의 5-8%가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감염된 어머니에서 자식으로 출산 전후 또는 신생아기에 전염되는 것이 중요한 감염 경로입니다. 위에서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이를 '수직감염'(垂直感染)이라고 합니다. B형 간염바이러스는 태반을 통과하지 못하기 때문에 임신 기간 중에 태아가 감염되는 경우는 많지 않으나, 출산 전후에 산모의 혈액이나 체액에 다량 노출되기 때문에 이 시기에 감염 위험이 높습니다.

특히 영유아기에 B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경우 만성화율이 높아서 90%에 달하며, 성인이 되어 감염될 경우에는 만성화율이 10% 이내입니다. 그밖에도 부부나 부모ㆍ자식 간의 관계처럼 긴밀한 접촉, 성관계, 오염된 혈액이 묻은 주사침이나 바늘 등에 찔렸을 때 감염될 수 있습니다. B형 간염 환자의 혈액, 정액, 타액은 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는 정상 피부를 뚫지는 못하나 피부에 미세한 흠집이 있다면 이를 통해 감염이 될 수 있습니다. 성병이라고 하면 임질, 매독 등을 연상하게 되나, B형간염도 성접촉으로 전염되는 중요한 병이고, 매춘부 집단에서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율이 일반인에 비해 현저히 높습니다. 소독되지 않은 바늘로 침을 맞거나 문신을 새기거나 귀를 뚫는 행위는 B형 간염바이러스를 전염시킬 수 있습니다. 주사 바늘을 돌려가면서 쓰는 마약 상용자(常用者)는 B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쉽습니다. 요즘은 모든 수혈 혈액에 대해 B형 간염바이러스 오염 여부를 검사하기 때문에 수혈로 인한 B형간염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B형간염은 중화(中和)항체인 표면항체(hepatitis B surface antibody; HBsAb)가 체내에 형성되어 있으면 예방이 가능하며, 이는 예방백신을 접종함으로써 가능합니다. 항체가 형성되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이 B형간염 환자이더라도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가령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환자인데 손자들을 가까이 해서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방항체가 형성되어 있으면 보통 일상적인 접촉으로는 전염이 되지 않습니다. 개인 전용 식기를 따로 쓸 필요까지는 없고, 같이 식사할 경우에는 환자 분이 자기 먹을 음식을 미리 덜어 먹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입속에 있는 음식을 손자에게 먹인다든지 얼굴을 부비대고 뽀뽀를 한다든지 하는 일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고, 일반적인 위생 수칙은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가족 중에 B형간염 환자가 있다면 항체가 형성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항체가 없으면 예방접종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산모가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라 하더라도 신생아가 출산한 지 12시간 이내에 면역글로불린 및 예방 백신을 접종하면 90% 이상에서 감염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조치가 시행되지 못했던 과거에는 감염되어 있는 산모에서 출생한 신생아의 90% 이상이 감염되어 우리 나라에 B형간염이 만연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어 왔습니다. B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산모가 신생아에게 모유를 먹여도 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모유에서는 B형 간염바이러스의 구성 성분인 표면항원(HBsAg)이 검출되고 있어 잠재적인 감염 위험이 있지만 실제로 모유를 먹고 감염이 된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따라서 모유의 감염력은 별로 강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나, 모유를 먹이는 것이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신생아가 예방항체가 아직 생성되어 있지 않다면 수유는 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B형간염은 예방 접종을 통해서 예방할 수 있습니다. B형간염 예방백신은 대개 3차 접종(0, 1, 6개월, 또는 0, 1, 2개월)을 시행하는데, 이것을 완료하면 80% 이상에서 예방 항체가 형성됩니다. 예방 항체의 역가가 10 mIU/ml 이상이면 B형간염에 대해서는 거의 안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방 항체가 형성은 되는데 역가가 미흡한 경우를 저(底)반응자라고 하며, 항체 형성이 아예 안 되는 경우를 무(無)반응자라고 합니다. 무반응자의 비율은 5-20% 정도로 보고자마다 다양합니다. 저반응자는 다시 3회 재접종을 시행하면 대개 항체 형성이 됩니다. 무반응자도 다시 3회 재접종을 시행해 보는 것이 좋으며, 이 경우 항체 형성율은 30-50% 정도인데 반응이 썩 좋은 편은 못 됩니다. 무반응의 원인은 유전적 소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방접종의 효과가 우수하므로 접종 후 일일이 항체 형성 여부를 확인할 필요는 없으나 B형간염의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사람은 항체 형성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습니다.

  •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 산모로부터 출생한 신생아
  •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의 가족
  • 급성B형간염 환자의 배우자
  • 혈액제제를 반복 투여하는 환자(혈우병, 투석 환자)
  • 정박아 수용소 또는 형무소에 수용된 자나 근무자
  • 타인의 혈액 또는 분비물에 자주 접촉하는 의료관계자(외과의사, 치과의사, 수술실 또는 투석실 근무자, 혈액채취 근무자)
  • 성관계가 문란한 자, 동성연애자
  • 마약중독자

B형간염 예방접종을 받고 몇 년이 지난 후에 추가 접종(부스터 booster)을 받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아직 확실히 결론이 내려져 있지 않습니다. 항체는 몸 안에 생성되었다가 역가가 서서히 감소합니다. 그러나 국내 연구 결과에 따르면 5년이 지나도 항체보유율은 여전히 높으며, 우리 나라같이 B형 간염바이러스에 노출될 기회가 많은 지역에서는 자연적인 추가 접종 효과도 꽤 있을 것이기 때문에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추가 접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추가 접종을 받게 되면 항체 역가가 더욱 높이 올라가서 좋습니다.

우리 나라는 B형 간염바이러스 만연 지역이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B형 간염바이러스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실제로 20세 이상의 성인에서는 50% 이상에서, 특히 40세 이상에서는 70% 이상에서 B형 간염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왔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세 이상의 성인에서 자연적으로 B형 간염바이러스에 대한 예방 항체를 갖고 있는 비율이 40-50%나 됩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B형 간염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이렇게 높지만 현재 백신 접종이 일반화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B형 간염바이러스 감염자수는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B형간염 예방백신의 개발은 B형 간염바이러스의 발견과 함께 의학사의 큰 업적이며, 서울 의대(醫大) 김정룡 박사님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만성B형간염의 자연 경과

우리 나라 만성B형간염 환자들은 성인이 되어 급성간염을 앓고 만성간염으로 이행한 경우는 많지 않고, 대부분 어린 시절부터 또는 언제인지 모르게 B형 간염바이러스 보유자가 되어 있는 환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몸 안에 자리잡은 B형 간염바이러스는 우리 몸과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면서 수십년을 경과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B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대개 임상 경과가 3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제1단계는 '면역관용'(免疫寬容 immune tolerence)의 시기, 제2단계는 '면역제거'(免疫除去 immune clearance)의 시기, 제3단계는 '비증식기'(非增殖期 non-replicative phase)라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 급성B형간염에 걸려 만성B형간염으로 이행할 경우는 바로 제2단계에서 시작하여 제3단계로 진행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제1단계 '면역관용'의 시기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B형 간염바이러스의 존재를 너그러이 봐 주는(관용) 시기란 뜻입니다. 어린 시절에 B형 간염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바이러스는 간에서 계속 활발히 증식하나 간염은 별로 없는 상태가 10-30년 지속됩니다.

이런 상태를 B형 간염바이러스의 '건강보유자'(healthy carrier)라고 하는데, 일종의 평화공존 상태인 셈입니다. 또한 이러한 시기가 있다는 것은 B형 간염바이러스가 직접 간세포를 손상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하는 증거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면(15-35세 경) 몸에서 B형 간염바이러스가 적임을 깨닫고 신체의 면역 기구를 가동하여 바이러스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제2단계인 면역제거기의 시작인데,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B형 간염바이러스 제거를 하려고 노력하는 시기란 뜻입니다. 즉 평화공존의 시기에서 전쟁 상태로 돌입하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는 간세포가 파괴되고 간염이 심해지는 급성 악화의 소견을 보이게 됩니다. 이 시기에 별 증상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나 때로 급성간염처럼 심한 증상을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전쟁의 결과 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제압하게 되면 바이러스의 증식이 매우 적고 간염이 경미한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 시기가 제3단계로서 B형 간염바이러스의 증식이 매우 적다는 의미에서 '비증식기'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에 e항원(HBeAg)은 소실되고 e항원에 대한 항체(e항체; HBeAb)가 생성되는데, 이를 혈청전환(血淸轉換 seroconversion)이라고 합니다. e항원(HBeAg)이란 바이러스가 증식할 때 만들어지는 물질인데, 바이러스가 몸에서 얼마나 활발히 증식하고 있는가를 반영하는 지표입니다. 한편 일부 환자들은 바이러스를 성공적으로 억제하지 못하고, 간염의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는 제3단계로 빨리 이행하지 못하고 전쟁 상태인 제2단계가 지속된다는 뜻이지요. 이 과정에서 간은 지속적으로 손상을 입게 되고 그 결과 간경변증으로 진행할 위험이 높아집니다.

간경변증이 된 사람들은 대개 비증식기에 들어가 있습니다. 간경변증 환자에서는 피 검사에서 흔히 AST, ALT(종래의 GOT, GPT)라고 부르는 간염 수치가 정상에 가까운 소견을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성간질환이 좋아진 것은 아니고, 이미 간에 경변이라는 비가역적인 변화가 와 있는 것입니다. 일부 환자들에서는 비증식기 중에도 이따금 바이러스가 활동하면서 간염이 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2단계에서 빨리 제3단계로 이행하게 되면 간의 손상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 제2단계가 오래 끌다가 제3단계로 이행하게 되면 이미 간이 손상을 많이 받은 후일 것입니다. 현재 만성B형간염에 대한 항(抗)바이러스제 치료는 B형 간염바이러스를 완전히 박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기에 바이러스의 증식이 낮은 상태로 유도하여(제2단계에서 제3단계로) 간손상을 적게 하고 간질환의 진행을 최소화 하자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만성B형간염의 예후는 다양합니다. 환자분들 중에는 간으로 인한 문제 없이 천수를 다 누리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사망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만성B형간염 환자 중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얼마나 빨리 간경변증으로 이행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 나라같은 B형간염 만연 지역과 미국이나 서구가 환자들의 예후에 있어 같지 않습니다. 구미 의학교과서에는 대개 30% 정도의 환자가 간경변증으로 진행한다고 나와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더 높아서 20년 동안에 만성B형간염 환자의 60%가 간경변증으로 진행하며, 만성C형간염도 이와 비슷하다고 보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간염의 정도가 심하거나 자주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는 경우에는 간경변증으로의 이행 위험이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성C형간염

우리 나라 만성간질환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인 C형 간염바이러스의 발견은 1989년 발표되었습니다. 병원체가 발견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지만, 이 바이러스가 존재함은 훨씬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즉 B형 간염바이러스가 발견된 후 수혈 시 B형 간염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혈 후 간염이 발생하는 것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A형이나 B형이 아닌 제3의 간염바이러스가 존재하리라는 것을 1974년 미국의 프린스 박사 등이 지적하였고, 이를 잠정적으로 비A비B(非A非B; non-A, non-B)형 간염바이러스로 명명하였습니다. 이후 10년 이상 세계적으로 이 간염바이러스를 발견하려고 갖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공하지 못하다가, 미국의 생명과학 회사인 카이론사(社)의 과학자들이 생명공학 기법을 사용하여 바이러스를 규명하는 데 성공하였고, C형 간염바이러스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이것을 발견하는 데 학자 한 사람이 50년간 일하는 것에 해당하는 연구 시간을 필요로 했다니 실로 대단한 일을 해 낸 셈입니다.

C형 간염바이러스는 주로 비경구적(非經口的)인 경로로 전파됩니다. B형 간염바이러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에 오염된 주사침이나 바늘이 문제가 되며, 수혈, 오염된 혈액제제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에이즈 바이러스도 이러한 경로로 잘 전염되는데, 이러한 경로에 의할 경우 C형 간염바이러스가 에이즈 바이러스보다 10배나 더 잘 감염된다고 합니다. 성관계나 수직감염(어머니에서 자식으로의 전파)은 가능한 전파경로이기는 하나 B형 간염바이러스나 에이즈 바이러스에서처럼 잘 전염되는 경로는 아닙니다. 가족 중에 환자가 있을 때 환자의 배우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전염 위험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환자들 중에는 전염 경로를 확실히 알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전염 경로가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C형 간염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전세계 인구의 1-3% 정도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세계 인구를 60억으로 가정하면 6천만-1억 8천만명의 환자가 있는 셈이지요.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 수는 세계적으로 3천만명 정도인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 수보다 C형 간염바이러스 감염자 수가 훨씬 더 많습니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C형 간염바이러스는 전세계적으로 골고루 분포하며 대개 인구의 0.5-2% 정도가 감염되어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인구의 1% 정도가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그러나 중동 및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는 감염율이 높아서 이집트같은 경우는 14%나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만성간염 환자 중 B형과 C형의 비율이 2:1 내지 3:1 정도로 B형이 더 많지만, 미국, 서구, 일본 등지에서는 B형보다 C형이 더 많습니다.

C형 간염바이러스의 만성화율은 대단히 높아서 70-80%에 달하고, 일단 만성으로 되면 자연 치유가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만성C형간염의 특징은 증상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증상이 있는 경우는 6% 정도밖에 안되며, 가장 흔한 증상은 피로감입니다. 만성C형간염은 본인도 모르고 있다가 피로감이 있어 병원을 찾거나 정기적인 신체검사에서 간기능검사의 이상이 발견되어 정밀 검사를 해보고 확인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십년 동안 증상이 없이 서서히 진행하다가 60세 이상의 고령에서 복수(腹水)와 같은 간경변증의 합병증이 나타나거나 간암이 발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만성C형간염에서 간염 수치인 ALT(종래의 GPT)치는 약간만 올라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지속적으로 ALT치가 정상인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에서도 간 조직검사를 해 보면 심한 만성간염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ALT치가 정상이라고 완전히 안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만성C형간염의 자연 경과(예후)는 이 병의 치료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직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만성C형간염은 시간이 가면 반드시 말기 간질환으로 진행한다고 하고, 혹자는 일부에서만 말기 간질환으로 진행한다고 합니다. 최근 프랑스의 학자들이 만성C형간염 환자들을 분석하여 질병의 진행 속도를 계산한 연구 논문을 의학 학술지 '란셋'에 발표하였는데, 환자 중에는 간경변증으로 빨리 진행하는 사람, 느리게 진행하는 사람, 중간 정도인 사람들이 있으며, 만성C형간염 환자 중 20년 이내 간경변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30% 정도이고, 30% 정도는 평생 간경변증으로 진행하지 않는다고 하고, 간경변증으로 진행하기까지 평균 30년 정도가 걸린다고 하였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조직검사 상 간염의 정도가 심하면 간경변증으로의 위험은 더 커집니다. 따라서 만성C형간염은 일부 환자들에서는 서서히 진행하여 간부전(肝不全), 간암 등의 합병증을 유발하는 중한 병이지만, 다른 부류의 환자들에서는 간경변증이 발생한 상태에서도 매우 서서히 진행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는 질병으로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국내에서 지난 20년간 만성간염 환자 1500명을 장기간 추적하였을 때 B형 간염의 경우 15년 생존율이 70%인데 비해 B형 간염이 아닌 경우(대부분이 C형 간염임)는 90%였는데, 이는 만성C형간염의 경과가 만성B형간염에 비해서 매우 느림을 시사하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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