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사성어

疾風勁草(질풍경초)

빠를 질, 바람 풍, 굳셀 경, 풀 초

세찬 바람이 불어봐야 비로소 억센 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곤란과 시련을 겪어 봐야 비로소 그 사람의 진가를 알게 된다

前漢(전한)도 2백여년이 되자 어지러워져 마침내 황제의 외척인 王莽(왕망)이 나라를 빼앗아 新(신)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백성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져 괴로움에 시달리다 못한 농민들이 각지에서 들고 일어났다. 이때 漢朝(한조)의 일족인 劉秀(유수)도 병사를 일으켰다.

유수의 군대가 오늘날 河南省(하남성)인 潁陽(영양)의 영천이란 곳에 이르렀을 때 王覇(왕패)라는 사람이 친구들과 함께 유수의 부대에 가담함으로써 유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유수의 1만명 군대가 昆陽(곤양)에서 왕망의 40만 대군과 격돌하여 승리했을 때에도 왕패는 큰 공훈을 세웠다. 유수의 군대가 하북 지방에 출정했을 때 당연히 왕패도 따라 나섰다. 이 원정은 매우 힘든 길이었다. 유수의 군대가 황하를 건널 때 농민군과 맞붙었는데 힘이 달려 苦戰(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 때 왕패와 함께 유수편에 가담했던 수십명의 친구들은 모두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 왕패만은 끝까지 남아 유수를 감격하게 했다. 유수는 왕패를 붙들고 말했다.

"영천에서 나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구나. 오직 그대만이 남아서 힘쓰고 있으니 '세찬 바람이 불어야 억센풀을 알아볼 수 있구려(疾風知勁草·질풍지경초)'."

疾風勁草는 論語(논어)의 명구 '엄동설한이 되어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절개를 알 수 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세한연후 지송백지후조야)'와 같다.

뒷날 후한의 光武帝(광무제)가 된 유수가 왕패를 중용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출전]《後漢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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