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

일상에서 "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과학계에서도 질문자님과 비슷한 의문을 품고 '악(Evil)'을 정량화하거나 그 비율을 추정하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있어왔다.

과학(심리학, 정신의학)에서는 '악하다'는 모호한 표현 대신 '반사회적 인격장애(ASPD)',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 또는 '어둠의 성격(Dark Personality)'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연구함.

통계로 보는 '악한 본성'의 비율

전문가들은 사회에 해를 끼치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부류(흔히 말하는 '악인')의 비율을 전체 인구의 약 1%에서 최대 4% 정도로 추정함.

  • 사이코패스 (선천적 요인 강함): 약 1% 로버트 헤어(Robert Hare) 박사의 연구를 비롯한 다수의 통계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약 1%가 임상적인 사이코패스 기준에 부합함. 이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고, 공포심이 없으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데 죄책감이 없다.
  • 소시오패스 (후천적/환경적 요인 포함): 약 4% 하버드 의대 출신의 심리학자 마사 스타우트(Martha Stout)는 그녀의 저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The Sociopath Next Door)》에서 "미국 인구의 약 4%, 즉 25명 중 1명은 양심이 없는 소시오패스"라고 주장했다.
  • 이 수치는 꽤 충격적인데, 학교 한 반이나 직장 내 부서에 최소 한 명쯤은 '양심이 결여된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확률임.

심리학적 분류: 어둠의 성격 (The Dark Factor)

최근 심리학계에서는 악한 성향을 '어둠의 3요소(Dark Triad)' 또는 '어둠의 4요소(Dark Tetrad)'로 분류하여 측정함.

  • 나르시시즘 (Narcissism): 자기애가 지나치고 타인을 인정받기 위한 도구로 봄.
  • 마키아벨리즘 (Machiavellianism):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조종함.
  • 사이코패시 (Psychopathy): 충동적이고 공감 능력이 결여됨.
  • 가학성 (Sadism - 4요소에 추가됨):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느낌.

[D-Factor 연구] 독일 울름 대학과 코블렌츠-란다우 대학의 연구팀은 이 모든 요소를 관통하는 'D-factor (Dark Factor, 어둠의 요인)'가 존재한다고 발표했다. 즉, 악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한 가지 특성만 가진 게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 죄책감을 합리화하는 근본적인 경향성을 공유한다는 것임.

왜 그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진화심리학적 관점)

"대체적으로 선한 사람들 사이에 왜 악인이 존재하는가?"에 대해 진화심리학과 게임이론은 흥미로운 설명을 내놓다.

  • 빈도 의존적 선택 (Frequency-dependent selection): 만약 세상 모든 사람이 '악(이기적)'하다면 사회는 붕괴함. 반대로 모두가 '선(이타적)'하다면, 그 틈을 파고들어 착취하는 소수의 '사기꾼(Cheater)' 전략이 엄청난 이득을 봅니다.
  • 자연은 이 비율을 조절함. 착취자가 너무 많아지면 서로 손해를 보기에 줄어들고, 착취자가 너무 적으면 다시 살기 좋아져 늘어난다. 학자들은 이 균형점이 전체 인구의 소수(1~5% 내외)에서 유지된다

주의할 점: '평범한 악'의 가능성

하지만 '타고난 악인'의 비율만으로 세상의 모든 악을 설명할 수는 없다.

  • 밀그램 실험 & 스탠포드 감옥 실험: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도 권위에 대한 복종이나 특수한 상황(감투, 익명성 등)이 주어지면 약 65% 이상이 타인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줄 수 있음이 증명되었다.
  • 악의 평범성 (The Banality of Evil):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거창한 악의 의도가 없어도 '생각 없음(무사유)'과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 순응'이 끔찍한 악을 만들어내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