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과 청각통합훈련(AIT)

자폐증 (autism) 참조.

들어가기 전에

[1. 논픽션] MBC 뉴스데스크: "오늘같은 추위ㅡ안면 마비 조심!"

앵커: 요즘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면서 안면신경마비 환자가 많이 늘고 있습니다. 한방에서 구안와사라고 하는 병인데. 초기에 고치지 않으면 심한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김xx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40대 초반의 이 여성은 한쪽 얼굴이 갑자기 마비돼 눈도 완전히 안 감기고 음식도 제대로 못 먹습니다.

인터뷰: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눈이 떨리고 저녁 먹으려고 하니까 입이 돌아가더라고요.

기자: 구안와사, 즉 안면마비의 전형적인 증상입니다. 이달 들어 이 한방병원은 같은 안면마비 증세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하루 평균 50명이 넘습니다. 안면마비가 생기는 원인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차가워진 날씨가 얼굴 주변 신경을 자극해 이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안면마비는 조기에 침과 한약으로 치료할 경우 두 달 안에 환자의 7, 80%가 완치되지만 치료시기를 놓치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인터뷰: 구안와사를 조기에 치료하지 않을 경우에는 인중이 마비로 비뚤어지거나 혹 경련이 올 수 있고 감각장애 등등의 증상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기자: 안면마비는 또 중풍의 전조증상으로 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즉시 정밀 뇌 검사를 받아 중풍을 치료해야 합니다. 안면마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찬바람에 얼굴이 지나치게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로 몸의 저항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MBC뉴스 김xx입니다.

[필자의 생각] "침이나 한약으로 치료하면 두달 안에 7-80% 완치된다"는 보도 내용만 생각하면, 시청자들은 안면마비에 침이나 한약이 치료효과가 있다고 받아들이기 마련이다. 이 보도상의 안면 마비는 소위 "말초성 안면신경 마비(Bell's Palsy)"를 뜻하는 것 같다. 의학 교과서에는 말초성 안면신경 마비는 "치료를 하지 않더라도 71%의 환자가 완전히 회복되며, 84%는 거의 정상적인 기능으로 돌아온다"고 되어있다. 즉, 자연적인 치료율이 71-84%라는 것이다. 보도에서 나온 침이나 한약의 효과 7-80%와 자연치료율 71-84%를 비교한 후, 침이나 한약의 치료효과 유무를 논해야 마땅하다.

[2. 픽션] 한국사람들은 쌀밥을 먹는다. A는 사람들이 평생 동안 먹은 쌀밥의 총량을 계산해 보았다. 통계를 내보니 평생동안 먹은 쌀밥의 양이 많을 수록, 그 사람이 죽음에 이르기 까지 남아있는 기간(여명)이 짧았다. A의 결론은 쌀밥을 많이 먹을수록 사람은 빨리 죽는다는 것이었고, 이 결과를 쓴 책을 냈다. 언론에서는 이 책을 인용해서 "쌀밥이 건강을 해친다"고 보도했다.

[필자의 생각] 나이가 많을수록, 평생 동안 먹은 쌀밥의 양은 당연히 많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사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쌀밥이 해롭다는 증거를 얻기 위해서는 연령을 포함한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적어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을 해야 한다. 쌀밥, 또는 동일한 양의 쌀이 배제된 음식을 먹인 후 두 집단의 수명을 비교해야, 비로소 쌀밥이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말할 수 있다.

[3. 픽션] B는 몇 달 전부터 하루에 5리터 이상의 물을 마셨다. 어느날 혈액의 전해질 농도가 떨어져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서 경련을 하여 병원에 실려왔다. 응급실 의사는 물 중독(water intoxication)이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보호자 C는 이웃집에 사는 D에게 "물은 중독을 일으키므로, 물을 마시는 것은 몸에 해롭다. 물을 적게 마셔라"는 충고를 했다.

[필자의 생각] 물을 많이 마시게 만들었던 B가 가진 어떤 문제가 물 중독의 원인이지, 물 자체가 물 중독의 원인은 아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한 진리이다. 한 사례나 증례에서 물을 많이 마신 후 경련과 혼수가 왔다고 해서, 물이 해롭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들어가며

필자는 진료실에서 자폐아 부모들로부터 청각통합훈련(auditory integration training, 또는 auditory training. 이하 AIT)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곤 한다. 기계를 가지고 순회하거나 대여해주는 사람이 있는데, 또는 어디에서 그런 것을 한다고 하는데, 과연 효과가 있는지…. 그래서 받아볼 만한 것인지 아닌지,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좋은지를 알고 싶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질문에 대한 100% 정답 또는 진실을 말해줄 수는 없다. 다만, AIT의 등장 과정이나 AIT에 대해 벌어지는 논란, 그리고 최근까지의 과학적인 연구결과들을 소개하는 것으로 필자의 의견을 대신하고자 한다. 말로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어려워서, 앞으로 예상되는 유사한 질문에 말 대신 글로 대답하려는 속셈도 있음을 밝힌다.

1991년 "기적의 소리 The sound of miracle"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판되었고, 이 책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기사화된 이후, 미국에서도 많은 부모들이 관심을 가졌으며 실제로 많은 환아가 개인당 수백달러씩 지불하며 훈련을 했다고 들었다. 1995년 필자가 참석했던 미국 소아정신과 학회의 자폐증에 관한 토론장에서도 이 AIT가 등장했으며, 거의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회의적인 견해를 제시했었던 기억이 있다.

AIT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

AIT는 1960년대 프랑스의 Guy Bernard에 의해 처음 개발되어 1991년에 미국에 소개되었으며, 우리나라에도 90년대 중반무렵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AIT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자폐증 외에도 학습장애, 우울증, 편두통, 간질 등에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폐증 환자들의 경우 주변에서 들리는 잡음들 중에서 적절한 청각정보를 걸러내는데 어려움이 있다거나 청각기억(auditory memory)에 문제가 있는 것은 비교적 잘 알려진 사실이다. AIT의 주창자들은 일부 자폐증 환자들에서 특정한 소리에 대한 과민성(hypersensitivity)이 있고, 일부에서는 다른 소리에 대한 반응이 없으므로, 어떻게 들을 것인지를 훈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AIT의 목적은 자폐아로 하여금 보다 정확하게 들을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AIT의 실시 방법

AIT 훈련 방식은 필자에게는 조금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직도 왜 이런 방법이 사용되었는지는 아직도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필자가 아는 한도에서 설명을 해보겠다. AIT안에서도 일종의 분파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행자에 따라 서로 다른 주장을 하거나, 조금씩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략적인 시행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공통적인 원칙은, 헤드폰을 통해서 "특별한 방식"으로 녹음된 음악을 환아에게들려주므로써, 환아에게 "듣기"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먼저, 청각검사(audiogram)를 시행한다. 일반적인 청력(hearing ability)을 재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음역(frequency)의 소리에 대한 지각(perception)이 떨어지거나(hypoacute), 또는 반대로 높은지 (hyperacute) 여부를 검사한다. 다시 말해 청각 극치(auditory threshold)를 알아본다.

다음에는 그 검사 결과와 소리에 대한 민감성이나 행동 등 환아의 임상적 양상을 종합하여 AIT의 대상이 되는지를 결정한다. 적절한 대상으로 판정되면, 10-12일에 걸쳐 하루에 두 번씩 총 20회 정도 훈련(회당 30분 정도 소요)을 실시한다. 들려주는 음악은 CD 등에 녹음된 디지털 음악에서 환아가 예민한(hyperacute) 음역대를 제거하거나, 둔감한(hypoacute) 음역대를 강화시키는 방식으로 재디지털화(redigitalize)한 것이다. 이때 Audiokinetron이란 기계가 사용된다. 재디지털화한 음악을 헤드폰을 통해 환아에게 들려준다. 훈련의 경과에 따라, 재디지털화를 반복한다.

이 훈련의 주창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들려주는 "특별한 소리"를 환아가 "듣는" 경험을 반복함으로써, 치료가 끝날 무렵에는 보다 정상적인 청각검사(audiogram)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주만에 훈련이 끝나기도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런 20회의 훈련을 4-12개월에 걸쳐 반복하기도 한다. 미국의 경우 훈련비용은 수백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은 앞에서 밝힌 바 있다. 부모들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우리나라에서는 몇십 만원 정도 비용을 받는 것 같다.

AIT가 효과가 있다는 측의 주장과 한계

시행자들은 AIT가 자폐아들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청각정보 처리가 좋아지며, 과민성이 줄어들고, 언어와 청각 이해의 호전 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효과를 제시하는 근거는, 사례 또는 증례(case)를 제시하거나, 훈련을 실시했던 사람과 보호자들이 평가한 결과들이다. 즉, 좋아졌다는 사례나 부모들의 경험담은 자주 접할 수 있다.

하지만, 효과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되었더라도 그 결과는 대부분 효과가 분명하지 않거나, 의심스러운(equivocal ) 것이었다. AIT의 치료효과를 증명할 만한 과학적인 연구결과 즉, case-controlled study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된다. (사례나 증례 보고의 한계와 문제점, 그리고 연구방법에 대해서는 필자의 다른 글,자폐증과 세크레틴을 참고하기 바람)

AIT가 효과가 없다는 측의 주장

다음과 같은 몇가지로 반대쪽의 주장을 요약할 수 있겠다. 주로 개념적인 반박들만 여기에 소개한다.

  • 청각을 보다 객관적으로 잘 측정할 수 있는 청각자극에 의해 뇌세포에서 발생하는 전위(evoked potential)를 검사해보면, 자폐 아동과 일반 아동에서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청각에 대한 민감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출발한 AIT는 효과가 있을리 없다.
  • 청각에 대한 검사를 제대로 자폐아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청각 검사 결과의 일관성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아주 적은 데시벨(decibel) 정도의 차이는 정상인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 시행자들은 안전하다고 주장하지만, 훈련에 사용하는 기계의 질(quality)와 기계에서 발생하는 소리의 안전성에 의문이 있다.
  • 청력/청각 전문가(audiologist)들의 견해도 대부분 부정적이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AIT에서 사용되는 방법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며, 있다면 어떻게 치료효과가 생기는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 소개

  • RImland와 Edelson(1995) : 만 4세부터 17세 사이의 자폐환자 17명을 대상으로 AIT의 효과를 연구하였다. 8명은 AIT를 시행했고, 대조군 9명은 AIT와 동일한 조건에서 가공(재디지털화)하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었다(controlled condition). 이때 평가자와 부모는 환아가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를 모르는 상태(double blind)였다. 그 결과 양 집단의 의미있는 차이는 없었다. 두 집단에서 동일하게 반복 행동, 과민성, 과잉행동이 줄어들고 집중력이 개선되었다. (필자 註: 두 집단이 동일한 결과가 나타난 것은, AIT가 일반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 비해 의미있는 효과가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단,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음악을 들려 준 집단과 들려주지 않은 집단을 비교한 연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 Bettison (1996) : 80명의 자폐 아동을 random하게 두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AIT를 시행하고, 다른 집단은 가공하지 않은 음악을 들려주었다. 1년 후 조사해보니, 양 집단이 공히 행동과 지능의 개선이 있었다. 결론은 자폐아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일부 효과가 있을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필자 註: 역시 AIT가 일반적인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 비해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결과다. 앞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음악이 이런 개선을 가져왔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된다. 다른 치료나 교육, 또는 성장에 의한 변화일 수 있기 때문이다.)
  • 미국 소아과 학회 장애아동 위원회 (1998) : 당시까지의 연구결과를 고찰한 후, AIT가 치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정보는 당시까지 없으며, 연구 상황을 제외하고는 그 사용이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정리하였다. (원문: This statement reviews the basis for two new therapies for autism-auditory integration training and facilitative communication. Both therapies seek to improve communication skills. Currently available information does not support the claims of proponents that these treatments are efficacious. Their use does not appear warranted at this time, except within research protocols.)
  • Mudford 등 (2000) : 16명의 자폐증 환아를 대상으로 crossover design(동일한 아이를 대상으로 AIT와 control treatment를 반복하는 것)의 연구를 시행하였다. 시행했던 치료의 순서, 부모-교사의 행동평가 점수, 행동 관찰 기록, 지능, 언어, 사회/적응검사 결과 등은 검사자, 부모, 교사가 알 수 없도록(blind design) 했다. 실험 결과, 대조군에서 AIT를 받은 군에 비해 부모가 평가한 과잉행동 점수가 더 개선되었다. 교사가 평정한 결과는 두 집단 간에 차이가 없었다. 양 집단에서 아이의 IQ와 언어 이해력의 개선은 없었으며, 적응/사회 행동 점수 및 표현 언어 지수는 감소하였다. 치료를 통해 임상적으로 또는 교육적으로 AIT가 도움이 되었다고 판정된 환아는 없었다. (필자 註: 이 연구 결과를 해석한다면, AIT 뿐 아니라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자폐증 치료 효과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요약하자면, AIT가 자폐증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필자의 말

이 부분에 대한 필자의 견해는 자폐증과 세크레틴이라는 글의 말미에 했던 것과 거의 비슷하므로 장황하게 적지 않겠다. 다만, 현 시점에서의 필자의 의견은 미국 소아과 학회의 의견과 같다. 즉, 치료가 아닌 "연구 목적"으로 시행하는 AIT에 대해서만 동의할 뿐, 치료 목적의 AIT 시행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그 돈 가지고, 아이에게 고기 한근 더 먹이고, 교구하나 더 사주며, 동물원이라도 같이 가봐라"는 식의 극단적 반대파는 아니다. "특별히 해될 것이 없다면, 이것 저것 다 해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허용파도 아니다. 다만, 자폐아 부모들이 아이의 치료와 교육의 주체로서, "근거있는" 정보로 무장해야 하며, 그 정보 안에서 자신의 아이에게 맞는 치료와 교육을 취사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Show me the data"

AIT를 자폐증의 치료법으로 이용하는 분들은 필자의 글에 반론을 제기할 것이다. 필자에게 AIT의 효과에 대한 개념적인 주장이나 사례 또는 증례의 제시가 아닌…. 과학적으로 AIT의 효과를 입증할 수 있는 연구 결과를 알려주면, 이 글의 내용을 수정보완할 용의가 있다.

참고문헌

  • American Academy of Pediatrics. Committee on Children with Disabilities : Auditory integration training and facilitated communication for autism. Pediatrics 1998 Aug;102(2 Pt 1):431-3
  • Bettison S. : The long-term effects of auditory training on children with autism. J Autism Dev Disord 1996 Jun;26(3):361-74
  • Dawson G, Watling R. : Interventions to facilitate auditory, visual, and motor integration in autism: a review of the evidence. J Autism Dev Disord 2000 Oct;30(5):415-21
  • Mudford OC, Cross BA, Breen S, Cullen C, Reeves D, Gould J, Douglas J. : Auditory integration training for children with autism: no behavioral benefits detected. Am J Ment Retard 2000 Mar;105(2):1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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