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라즈마

코난이 구해준 그녀.

라즈마의 저널

1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들이 찾아오리라는 걸 알았다. 단지 시간 문제였지.
내가 예상치 못했던 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황무지의 끝자락에 버려지는 것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곳에 말이지.
나를 이렇게 만든 비겁한 바보들이 차마 나를 죽일 용기가 없었나 보군. 그들은 더러운 잡종이고, 노예와 평민의 버림받은 혈통이기에 왕족의 피를 흐르게 할 배짱은 없지.
대신에, 내 손과 발 그리고 입을 묶어 신만이 아실 장소로 몰래 끌고 왔다.
독수리의 먹이가 되라고 날 버렸지만, 한 남자가 나를 구출했지.
그 남자! 잘 빠진 사지에 구릿빛 피부를 가진 남자로, 셈의 도시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나에게 다가왔고 그의 푸른 눈빛은 계속 보기 어려웠지.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한때는 제왕의 딸이었던 이가 이제 황무지 끄트머리에서 웅크리고 있지. 낯선 땅의 이름 없는 추방자가 되어서 말이야. 내 손에는 그가 건네 준 딱 맞는 양날 도끼가 들려 있지.
대답은 '그렇다'이다. 살아남을 것이다.

2

난 여기에 혼자 있는 게 아니다. 이것이 강둑에서 부들부들 떨며 웅크리고 있다가 처음 얻은 계시이다. 넝마를 걸친 쇠약한 무리는 강가에 모닥불을 피우며 온기를 쬐려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바보들. 불빛은 비우호적인 존재의 시선을 끌기가 쉽다. 나라면 절대 자신을 그런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을 거다.
아버지께서는 생존하기 위한 상책은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라고 항상 가르쳐 주셨다. 삶은 항상 우리의 선택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멍청한 실수를 피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난 홀로 어둠 속에 남겨졌다.

3

아버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고 말씀하셨지. 하지만 다르파르 족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줄지 아직 모르겠다.
나는 강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다르파르에게 잡혔다. 그들은 곤봉으로 나를 무자비하게 패고 포로들로 가득한 감옥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씩 희생 제물 구덩이로 끌고 갔다. 희생자들의 비명 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 퍼지고 냄새가 났는데… 군침이 돌아서 스스로에게 혐오감이 들었다.
나는 세트가 요구하는 피의 희생과, 데르케토의 질펀하고 난잡한 의례를 본 적 있지만, 뾰족하게 갈린 이빨을 가진 야만인들과 그들의 턱까지 줄줄 흐르는 피 같은 건… 나는 이 어둠이 싫다. 너무나 소름끼쳐.
다른 포로들 중 일부는 북쪽에 있다. 그 중 한명은 자기를 보물을 찾고 있는 스티지아인 현상금 사냥꾼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북쪽에 스티지아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옆에 있는 감옥 안에 있는 여자는… 해적처럼 옷을 입었네? 그럼 우리가 바다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걸까?
해답이 필요해. 뛰어 다니느라 바빴다. 생존하느라 바빴고.
이 감옥에 느슨한 곳이 하나 있다. 나는 내 스티지아인 친구와 함께 천천히 느슨한 곳을 풀고 있고, 한밤중에 여길 벗어날 거다.
다른 사람들을 피한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았어. 추방자의 땅으로 도망치려면, 잘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해. 다른 사람들이 필요해.
교훈을 얻었다.

4

나는 거인들과 함께 걸었다.
내 스티지아인 친구(이름은 자캐드이다)와 나는 다르파르 마을을 탈출해 이 곳을 발견했다. 그들을 완전히 따돌렸다고 확인하기는 힘들다. 우리가 이 곳에 당도하자 그들이 달아났기 때문이다. 아마 이곳을 신성시 하는 것 같다.
우리가 입구에 들어서자, 우리 팔찌가 갑자기 번쩍였고, 거대한 문 옆의 석판이 마치 악마의 불꽃같은 빛을 냈다.
이상하고 거만한 느낌의 목소리가 우리의 마음속으로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나의 마음속에 말을 걸자, 나는 자못 장엄한 이계의 생명체들이 사는 고대 도시에 늘어선 검은 첨탑을 보았다.
나는 검은색 연꽃의 꽃가루를 마신 사람처럼 쓰러져 꿈에 빠져들었다.
꿈에서는, 검은 돌길을 따라 걷고, 태고의 존재들과 대화하면서 나란히 앉아 설명할 수 없는 불경스러운 마음에 대해 의논했다. 사람들이 그들의 영토에 들어서는 것을 관찰하면서, 처음에는 즐거워 하다가 놀라는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들이 변하는 모습을, 피난처를 찾아 그들에게 오는 인간들에 대해 마음을 굳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국경을 봉쇄했다. 인간들을 붙잡아 노예로 삼았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착용한 이 팔찌로 그들을 속박했다.
깨어나고 나서 몇 시간 후, 자캐드와 내가 본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분명, 그는 내가 본 환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냥 여기서 떠나라는 경고의 목소리만 들었다고 했다.
양아버지 슬하에서 배운 단순한 정치 문제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일이 확실해졌다. 답을 찾아야 한다. 해답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5

내가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해적들을 만나러 갔다. 해적! 사막 한가운데서!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아. 계곡 가운데의 메사에 돌과 철로 만든 선박을 지은 육지 해적이다. 그들은 해적 복장을 입고 스스로를 '검은 손'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자캐드와 나처럼 추방자의 땅 밖으로 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지만, 큰 성과를 이룬 것 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숨겨진 지도와 비밀 보물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그들의 리더인 콰리즘 도살자와 이야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서운 여자였다. 그녀를 따르는 멍청이들과 상관 없이, 그 여자의 진짜 계획은 따로 있을 것이다.
자캐드와 나는 서쪽으로 계속 가기로 했다. 자캐드는 밖에는 더 많은 폐허가 있다고 말했다. 도시 전체가! 하지만 위험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그러나 그곳을 지나 북서쪽에는 그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가 있다.
계속 찾을 것이다…

6

자캐드는 떠났다. 어둠과 황폐함이 삼켜 버렸다. 날개 달린 악마는 내 동반자를 데리고 별을 향해 날아가면서 귀신들린 장송곡을 부르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 도시로 첫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무언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둠은 내 정신을 휘감아 무너뜨리는 파도이다. 언제 생겼는지도 모르는 상처에서 피가 스며 나온다.
폐허가 풍경은 물론 내 정신에도 끔찍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과거와 현재는 내 마음속에 함께 움직이고..
나는 주인을 돕기 위해 서둘러 달리는 노예이며..
나는 폐허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여자고..
나는 전쟁과 사악을 계획하는 신..
나는 땅을 뒤지는 모래 폭풍이며..
나는… 나 자신이다. 혼자 떨어져. 추방된.

7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나는 결코 살지 못했던 삶, 내가 알지 못했던 얼굴, 결코 본 적이 없는 삶을 꿈꿨다. 그리고 내 꿈 중 하나에서 대답을 찾았다. 그러나 나는 도시로 돌아가야 한다. 결코 혼자서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이에나 가죽으로 옷을 입은 거친 사람들이 나를 어디에서 발견한 것인지 몰랐다. 그들은 나를 데리고 도시 북쪽 어딘가의 캠프로 갔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사람의 텐트에 있는 털 더미에서 자게 했다.
그들은 내가 깨어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자는 척을 하면서 그들을 관찰했다. 매우 이상한 점이 있다. 그들의 신체 언어는 틀렸다. 나는 아스갈른의 거리에서 자랐고, 걸음을 떼기 전부터 상인의 흥정하는 몸짓을 이해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들은 음식 쓰레기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들개를 연상시킨다. 그들은 지나치게 가깝게 서서, 서로의 냄새를 맡는다. 그들 중 하나가 소리치면, 다른 이들은 울부짖는다.
여기서 나가야만 한다.
그들은 하이에나처럼 울부짖으며 폐허 중 한 곳인 오래된 경기장에 모여들고 있다. 그들은 어떤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 벌거벗은 남자가 피로 젖은 하이에나 가죽을 망토처럼 두르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칠 순 없다. 나는 반드시 빠져 나가야 한다.
서쪽으로 가서 자캐드의 사람들을 찾을 것이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8

나는 준비가 됐다.
내가 처음 도시에 도착했을 때, 자캐드의 사람들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이름을 알았고…
셰마이트! 나의 동포! 친숙한 얼굴들. 어떤 사람들은 내 얼굴을 알아 보았지만 나는 한눈에 그들을 조용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곳에 머무는 것이 좋았다. 휴식을 취하며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다. 추방자의 땅은 무서운 곳이지만, 여기 사람들은 무언가를 만들어 냈다.
나는 몇 년 동안 여기에 있었던 사람들과 이야기했다.
그들은 나에게 반대 세력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병사들은 땅을 휘저으며 사람을 죽이고 약탈을 일삼았다. 그들은 나에게 갑자기 어디선가 생겨나 또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모래 폭풍에 대해 알려 주었다.
나는 폐허가 된 도시에서 본 환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폐허의 중심부 밑에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는 장소에 대해서. 우리를 잡아넣을 땅의 지도에 대해서.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보석에 대해서.
그들은 원정대를 보내기로 했다. 나는 그들을 폐허로 인도 할 것이다.
그리고… 자유로.
저널의 마지막 페이지를 여기에서 놓고 간다. 저널에는 지금까지의 여정이 적혀 있다. 말보다 행동이다.
우리가 추방자의 땅에서 다시 만나지 않기를.
- 솀의 라즈마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conanexiles&no=3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