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을 먹고 있는데요?
진료 받으러 오는 피부병 환자에게 처방을 하고나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한약을 먹고 있는데 양약을 같이 먹어도 됩니까?" 또는, "한약을 먹고 있는데, 다른 약을 같이 먹으면 안 된다던데…"
정통의학에서 쓰는 의약품(일부에서 한약과 대비하여 양약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냥 약으로 불러야 마땅한)은 시판되기 전까지 인체에 미치는 영향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에 대하여 철저히 연구한 결과가 있어서 이걸 인체에 투입하면 어떤 현상이 생길 것이라는 것이 예측되지만, 한약은 그런 정보가 전혀 없거나 매우 부족합니다.
한약은 약효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안전성에 대해서도 연구다운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임신중에도 한약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몸보신한다고 먹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위험천만한 생각입니다.
약을 같이 먹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려면, 이 약과 저 약을 같이 먹으면 서로 이러저러한 상효작용이 생겨서 인체에 어떠한 악영향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양약과 한약을 같이 먹지 말라고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유를 들어 설명하는 경우를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듣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명제가 있다고 해도 실제로 그런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일례로 "어릴 때 한약(숙지황)을 먹으면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숙지황을 먹어서 머리가 하얗게 되는 경우가 얼마나 있는지 확인을 해보고 하는 얘기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대답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약을 처방 받을 때 대개 "돼지고기, 닭고기를 먹으면 안 된다"는 얘기를 흔히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한의사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면 논리적으로 타당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실험적인 결과를 제시하는 일은 더더구나 없지요. 한약 먹을 때 돼지고기나 닭고기를 먹고 탈이 난다면 얼마나 많은 경우에 그런지, 어떤 탈이 나는 것인지 확인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약(양약)을 한약과 같이 먹어서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하려면, 무수하다시피 많은 약에 대해서 전부 검증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러저러한 약과 이러저러한 한약을 같이 먹었을 때 어떤 문제가 얼마나 많이 생기더라는 정도의 연구결과는 제시하고서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한약을 같이 먹어도 됩니까?"라고 묻는 경우에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적당할 듯 합니다. "그 한약을 먹어서 몸에 해로울 일이 없다면, 이 약을 같이 먹었다고 해서 문제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라고요…
한의학과 감초
감초는 주로 뿌리를 약재로 사용하는데, 글리시리진(glycyrrhizin)이라는 과당과 사포닌이 주성분입니다.
감초의 작용 원리를 알려면, 다시 스테로이드 호르몬 이야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부신피질에서 생산된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여러 대사과정을 거치면서 조금씩 변해 결국 몸 밖으로 배설됩니다. 몸은 일정한 농도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만들어내는 것이고요.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분해와 배설 과정에는 여러 효소가 작용하는데, 만일 그런 효소들의 작용이 차단되면, 없어지지 않고 남은 것과 새로 만들어진 것이 더해져 몸에 스테로이드가 너무 많아지겠지요? 말하자면 외부에서 스테로이드를 투여했을 때와 똑같은 결과가 생기는 겁니다.
감초 성분인 글리시리진이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랍니다. 특정 효소(11 beta-hydroxylase)의 작용을 방해하여 스테로이드 호르몬이 분해되지 못하게 해서, 스테로이드 호르몬제 투여와 똑같은 효과, 즉 입맛도 좋아지고 몸 상태도 좋아진 듯한 느낌을 주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감초가 왜 '약방의 감초'로 쓰이는지 이해가 되시는지요?
병원에서 처방하는 스테로이드 약은 조금만 써도 해롭고, 감초는 아무리 많이 써도 문제가 없을까요?
스테로이드 약이 부작용을 막기 위해 엄격한 기준에 따라 사용되는데 반해, 표준화도 안 되고 부작용도 충분히 조사되지 않은 감초는 제한없이 그냥 사용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