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헨리크 입센 ‘인형의 집’

‘인형의 집’은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1879년에 쓴 희곡이다. 19세기 후반,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이 시기 바깥의 경제활동을 전부 남성이 담당하면서, 가정 내에만 머무는 여성의 역할은 급격히 줄어듭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주인공 노라는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귀여운 딸로, 결혼 후에는 남편(토르발 헬메르)의 사랑스러운 아내로 살고자 노력한다.

노라는 그것만이 여자의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작은 종달새’ ‘귀여운 다람쥐’ ‘놀기 좋아하는 방울새’라고 불리며, 한 남자의 아내이자 세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가요. 이런 노라의 모습은 당시 유럽 여성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결혼 전에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다가, 결혼하고 나서는 오로지 남편의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지키는 것만 생각하며 예쁜 인형처럼 살아가는 거예요. 이런 삶에는 자신의 생각이나 의지 따위는 필요 없지요.

그런데 이런 노라가 ‘인형의 집’을 박차고 나오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벌어진다. 과거 노라는 병에 걸린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가족을 돌보느라 남편 몰래 아버지 서명을 위조해 돈을 빌렸는데, 이 사실이 발각된 거예요. 노라는 가족을 위해서 한 일이기에 당연히 남편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믿지만, 남편 헬메르는 그녀에게 등을 돌립니다.

헬메르: 지난 8년 동안 나의 기쁨이자 자랑이었던 사람이 위선자에 거짓말쟁이라니! 그보다 더 끔찍한 건 범죄자란 사실이야! (중략) 당신이 내 행복을 몽땅 망쳐 놓았어. 내 미래도 다 파괴해 버렸고.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해. 경박한 여자 때문에 내가 이렇게 형편없이 허물어지고, 이렇게 비참하게 파멸하다니!
노라: 토르발, 난 지금껏 이곳에서 8년이란 세월을 낯선 남자와 함께 살았고, 그 남자와 함께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 난 그런 생각을 하면 참을 수 없어요! 난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고 싶어요.

‘작은 종달새’로 불리던 노라는 남편 헬메르에게 과연 어떤 존재였을까? 헬메르에게 진정 중요했던 것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명예뿐이었어요. 노라는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을 쏟아부었지만, 정작 자신은 아버지나 남편에게 한 사람의 인격체가 아니라 그저 인형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집을 나간다. 그간 자신이 행복이라고 믿었던 것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알게 된 거예요.

“행복하지 않았어요. 한 번도 행복한 적 없어요.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요, 단지 즐거웠을 뿐이에요. 당신은 늘 내게 친절했지요. 하지만 우리 집은 놀이를 하는 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이곳에서 난 당신의 인형 같은 아내였지요. 아빠 집에서 인형 같은 아이였듯이요.”

희곡 ‘인형의 집’이 1879년 코펜하겐 왕립극장에서 처음 공연되었을 때, 이런 노라의 행동은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어요. 하지만 이후 사람들은 누구의 아내가 아닌 독립적인 인격체로 살아가고자 했던 노라의 선택을 점차 지지하기 시작했어요.

‘노라’는 여성의 권익 보호와 페미니즘(feminism)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고, 유럽 각지에서 여성 해방 운동이 일어났지요. 남녀가 불평등한 사회 인습에 대항하여 여성의 지위를 확립하고자 하는 사상을 뜻하는 ‘노라이즘(Noraism)’이란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