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교

기원 후 600년 경 예루살렘의 동굴에서 명상을 하던 무함마드가 '알라'신의 계시를 받고 창시한 유일신교이다.

무함마드가 632년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한 것이 화근이 되어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어졌다. 시아파와 수니파는 태생적인 앙숙관계다. ‘물과 기름’에 비교될 정도로 섞일 수가 없다. 여기에는 뿌리 깊은 종파간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두 종파는 원래 이슬람의 한 갈래였지만 무함마드 사후에 누가 그의 자리를 승계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을 하였다. 수니파는 아부 바크르, 우마르, 우스만, 알리 등 회의를 통해 선출된 4명의 칼리프를 합법적 후계자로 인정한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알리만을 유일한 후계자로 인정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다.

이후 제4대 칼리프인 알리가 661년 암살1)되고서 우마이야 왕조가 들어섰지만, 680년 알리의 차남 후세인마저 반란을 일으키다 참혹하게 살해당하면서 수니파에 대한 시아파의 원한은 더욱 커졌다. 이때부터 두 종파 간 죽고 죽이는 살육의 역사가 시작된다.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이란은 줄곧 다수파인 시아파가 정국 주도권을 잡았지만, 이라크는 소수인 수니파가 주로 정권을 잡으면서 시아파를 핍박하게 된다. 사담 후세인도 소수인 수니파 였고,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이 무너지면서 시아파는 드디어 정국 주도권을 쥐게 된다. 물론 미국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1)
아들 둘도 살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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