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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cmaxim205 [2011/11/09 02:20] – 외부 편집기 127.0.0.1tech:cmaxim205 [2016/07/12 00:56] (현재) – 바깥 편집 12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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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고사성어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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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자위정(各自爲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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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各:각각 각. 自:스스로 자. 爲:할 위. 政:정사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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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이 각자 자기 멋대로 행동하며 전체와의 조화나 협력을 고려하지 않으면 그 결과가 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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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추 시대의 일이다. 송(宋)나라가 진(晉)나라와 서로 협력하였기 때문에 송나라와 초(楚)나라는 사이가 벌어졌다. 이에 초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에 명하여 송나라를 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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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전 전야에 송나라의 대장 화원(華元)은 장졸들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특별히 양고기를 지급했다. 장졸들은 모두 크게 기뻐했지만, 화원의 마차부 양짐(羊斟)만은 이 양고기를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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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는 부장(副將)이 그 이유를 묻자 화원은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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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차부 따위를 먹일 필요는 없다. 마차부는 전쟁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니, 내가 한 일에 아무 참견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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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튿날 양군의 접전이 시작되었다. 화원은 양짐이 모는 마차 위에서 지휘를 했다. 송나라와 정나라의 군사가 모두 잘 싸워 쉽게 승패가 나지 않아 화원이 양짐에게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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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차를 적의 병력이 허술한 오른쪽으로 돌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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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나 양짐은 반대로 정나라 군사가 밀집해 있는 왼쪽으로 마차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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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 어디로 가려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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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의 양고기는 당신의 뜻이며, 오늘의 이 일은 나의 생각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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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짐이 이렇게 말하며 곧바로 정나라 군사가 모여 있는 곳으로 마차를 몰았기 때문에 화원은 마침내 붙잡히고 말았다. 대장이 포로가 된 것을 본 송나라는 전의를 상실했다. 그 결과 250여 명의 군사가 적군에게 사로잡히고 사공(司空)까지 포로가 되었다. 정나라 군사는 도합 460량의 병거(兵車)를 포획하고 대승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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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나라의 대패는 바로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各自爲政"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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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전]《春秋左氏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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