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화교 학살 사건 (1998)

  * 1998년 5월2일 ‘교육의 날’ 동부 자카르타의 사범대학(IKIP) 학생들은 수하르토의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며 국민협의회(MPR)를 향해 교외 진출을 시도했고, 
                   폭동진압경찰은 공포탄을 쏘아대며 저지했다. 
                   두명의 중상자 발생. 
  * 1998년 5월11일 자카르타 서부의 트리삭티대학, 인도네시아 학생운동사에 정치무풍지대로 기록되었던
                  트리삭티에서 최초로 수하르토 규탄 집회. 진압군의 발포로 학생 6명 사망.
  * 1998년 5월12일 자카르타 전역 무법천지로. 상가 불타고 사망자 속출. 도심에 탱크 진주. 
                  특전사 코파수스 폭동진압 훈련 개시. 
  * 1998년 5월13일 인도네시아 전역 혼란의 도가니로. 전국적으로 사망자 발생. 
                 화교여성들에 대한 조직적인 성폭행 자행. 
  * 1998년 5월15일 전략예비사령부에서 정치·군부 비밀회담 개최.
  * 1998년 5월16일 5만여명의 대학생들 국민협의회 점거 시위 돌입. 
                  인도네시아 전역 혼란상태로.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화교 학살 사건으로 2000명 이상이 학살당하고 수백명의 여성이 강간 살해 당했다.

사건의 발단은 인도네시아 정부에 대한 시위였는데, 불똥은 인도네시아 거주 중국인들에게 튀었다. 거대 화교자본의 지역경제 잠식으로 인한 지역민들의 반발로부터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해당 지역 인도네시아인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화교인들의 집을 불태우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죽창으로 찔러 살해, 시체를 차에 메달아 끌고 다니기도 했으며 백주대낮에 대로변에서 강간을 서슴치 않았다.

또한 군중은 광기에 휩싸여 참수한 머리들을 들고 몰려 다니며 구호를 외치기도 했는데 그 광경은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이에 화교와 중국인들은 격노했으나 인도네시아와 당시 상호협력 관계에 있었던 장쩌민의 중국 공산당은 내정간섭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많은 원성을 샀다.

결론적으로는 중국 본국의 언론차단으로 사건은 일단락되게 된다.

  •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잔인한 사진들 중에는 인도네시아-동티모르 분쟁 당시의 사진도 많이 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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