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유씨

강릉 유씨

중국 한나라 황제인 유방의 41세손인 전은 유씨의 시조이다. 유전은 송나라때 병부상서 (현 국방장관)벼슬에 올랐으나 수확하기 전 세금을 부과하는 청묘취식법의 부당함을 주장하면서 고려로 건너오게 된다. 유전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일군 기계면에 정착해 유씨의 도시조가 된다. 

이후 유씨는 크게 거창유씨와 강릉유씨, 백천유씨로 나뉘게 되고 거창유씨는 경상도지역, 강릉유씨는 서울을 비롯한 전라도, 백천유씨는 북한에 주로 생활하게 된다.

강릉유씨의 시조는 승비이다. 승비는 1273년 강원도 우계현(현 강릉)에서 태어나 충렬왕 18년 성균시에 합격해 관직을 시작했고 이제현과 함께 원나라 학사 요수, 염복, 조맹부, 우집등을 만나 사서를 연구하고 효행록을 편집했다. 

승비는 조정의 관료를 거쳐 상서도성원좌복야(정2품벼슬)에 올랐다. 승비는 묘소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으나 흔적을 찾을수 없어 후손들이 뜻을 모아 지난 1988년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현내리에 승비의 유적비를 설치했다.
 


승비는 송백, 송단, 송절, 송재 4명의 아들을 두게 된다. 장남인 송백은 고려때 정3품의 벼슬인 상호군을 지 냈고 그의 아들인 천봉은 고려조에 지안악군사의 벼슬을 지냈다.

천봉의 아들 창은 강릉유씨를 알리는 중시조가 된다. 고려 공민왕 시절인 1352년 태어난 창은 천봉의 큰아들이다.

20세 병과에 장원급제한 창은 성균관학유(정9품벼슬)를 시작으로 예문관직제관등을 역임하다 조선개국과 함께 조선조 초대 성균관대사성(관장)에 임명된다. 이어 창은 정2품의 벼슬인 의정부 참찬에 이어 옥천부원군으로 임명된다. 이외에도 보국숭록대부(정1품)등의 벼슬도 주어지게 된다. 

세종3년에 세상을 떠난 옥천부원군 창은 현재 서울 강동구 상일동에 묘소와 함께 해천재가 설치돼 있고 매년 음력 10월3일 종친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