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 출처: 엔하위키- 스코틀랜드(CC BY-NC-SA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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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78,387km²
인구 5,222,100명(2010)
수도 에든버러
종족구성 89% 스코트인, 7% 기타 영국인
1인당 GDP 26,766£(2010)

개요

영국을 이루는 네 지역 중 하나.

브리튼 섬의 북쪽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도는 에든버러(Edinburgh). 스코트 게일어로는 '툰 에이천(Dùn Èideann, /tuːn ˈeːtʃən/)'이라고 한다. 라틴어로는 스코티아(Scotia),1) 프랑스어로는 '에코스(ÉCOSSE).2)

역사

1706년 12월 31일까지는 스코틀랜드 왕국(Rìoghachd na h-Alba)이었으나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 왕국과 연합왕국을 이루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되었다. 한 나라가 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남쪽 잉글랜드와 사이는 좀 소원한 편.

통일 이전

로마제국 시대, 잉글랜드는 로마에 복속됐지만 스코틀랜드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다. 거친 파도에 의해 깎여진 산맥과 접근조차 하기 힘든 깊은 계곡들로 이루어진 이 땅을 정복하는 건 쉽지 않는 일이었다. 로마 제국 시기 스코틀랜드 지역은 칼레도니아라고 불렸다.

서기 43년 로마는 잉글랜드를 정복한 뒤, 79~84년 여러 차례 스코틀랜드로 진격했으나 거센 저항에 부딪쳐 점령에 실패하게 된다. 로마는 스코틀랜드를 점령하는 대신 그들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장벽으로 막아 버렸다. 서기 122년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는 동쪽 뉴캐슬에서 서쪽 솔웨이 만까지 113km의 장벽을 쌓는다. 3)

사실상 역사의 분열은 로마 황제가 세운 하드리아누스 성벽으로, 성벽 이하는 브리타니아로서 이후 잉글랜드로 발전했고, 그 북쪽은 켈트계열이 계속 남아 이후 스코틀랜드로 발전했다. 그 뒤 잉글랜드는 300년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지만, 스코틀랜드는 로마로부터 자유로웠다.

이후 노르만족의 전래 이후 잉글랜드의 침공을 받았지만 웨일스와 달리 완전히 정복 당하지는 않았으나, 이 때문에 계속하여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중간에 던켈트 왕조의 알렉산더 3세가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그의 외손녀 마가렛마저 요절하면서 왕통이 끊어졌다. 이에 스코틀랜드의 귀족들 사이에 왕위쟁탈전이 일어났고, 이를 틈타 에드워드 1세가 나타나 스코틀랜드를 제압하고 잉글랜드의 영토로 편입하는 등 모욕을 당했다.

당연하게도 이에 반발하는 스코트인들이 많았는데, 윌리엄 월레스(William Wallace)라는 사람이 반란군을 일으켜 잉글랜드군을 몇차례 격퇴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 역시 만만치않은 인물이었기에 결국 패퇴하였다. 윌리엄 월레스와 그 부하들은 이후로 지속적인 게릴라전으로 잉글랜드를 압박하는 작전을 세웠으나 결국 사로잡혀 죽었다.4)

그러나, 이후에 스코틀랜드 귀족 브루스 가문의 로버트 1세가 윌리엄 월레스의 뒤를 이어 독립전쟁을 지속하였다. 로버트 1세는 한때 패배하여 국외로 망명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배넉번 전투에서 에드워드 2세의 대군을 격파하였고, 마침내 에드워드 3세 때에는 잉글랜드로부터 독립국임을 인정받아 스코틀랜드 왕국으로 독립한다.

그러나 추운 기후와 산이 많은 지형 탓에 농업 생산력이 잉글랜드보다 달려 인구는 항상 적었다. 상대적으로 더 강한 잉글랜드를 견제하기 위해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고, 양국의 결혼동맹으로 태어난 사람이 바로 메리 스튜어트이다.

통일 이후

잉글랜드와 통일된 계기는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결혼을 하지 않아 자식이 없자, 스코틀랜드의 젊은 왕 제임스 6세를 잉글랜드 왕세자로 삼은 것. 제임스 왕의 할머니가 엘리자베스 1세의 고모였다(그런데 엘리자베스 1세는 제임스의 어머니인 메리 스튜어트 여왕을 죽였다. 당시 제임스 6세는 일단 대사를 통하여 어머니의 구명을 청했으나, 근본적으로는 태어나서 어머니를 한 번도 보지 못한데다가 그녀가 죽으면 자신이 잉글랜드 왕위계승자가 되기에 적극적이진 않았던 듯 하다.) 엘리자베스 1세의 뒤를 이어 제임스가 잉글랜드 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두 왕국은 통합되었지만, 당시에는 아직 한 나라는 아니고 별개의 두 나라가 같은 임금을 모시는 동군연합 단계였다. 완전히 한 나라로 통일된 것은 여왕 때.

이런 역사 때문에 꾸준히 분리독립 운동이 있어왔다. 1990년대 이후 타협책으로 영국 중앙정부는 점진적으로 자치권을 확대해왔다. 현재는 독자적인 의회와 정부가 외교/국방을 제외한 모든 분야를 통치하고 있다. 2007년 처음 집권한 스코틀랜드 민족당이 2011년 총선에서 단독과반수를 차지하면서 공식적인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준비했고, 투표일시는 2014년 9월 중순으로 공시되었다.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연합왕국의 4백년 왕관이 자기 대에서 끝날지도 모른다며 내심 우려하고 있다.

스코틀랜드도 17세기 초중반 식민지를 건설할 다리엔 계획(Darién scheme)이 있었다. 중앙아메리카 파나마에서 남미대륙의 콜롬비아 사이에 있는 이 다리엔(Darién)이라는 지방에 스코트인들을 이주시키고 그곳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무역 거점을 건설하겠다는 것이였는데 파나마의 스페인인의 공격과 전염병이 돌아서 완전히 망하고 스코틀랜드의 재정상태는 최악이 되었다.5)

대대로 프랑스와는 동맹국인 성격이 강했다(프랑스+스코틀랜드 vs 영국+플랑드르).

켈트계인 스코트인의 지방이라 내심 잉글랜드를 굉장히 싫어하고, 죽어도 잉글랜드에게 안지려고 하는 지역성이 있다. 본격적인 무장독립운동은 아니지만 영국에서 독립하자는 움직임도 상당히 많은데 그런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인물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 밴드 프로클레이머스가 있다. 2002 월드컵 때 스코틀랜드 출신 국회의원이 "잉글랜드를 응원하자"고 했다가 폭풍같이 까이기도 했다. 그리고 2010 남아공 월드컵 잉글랜드와 독일의 16강 경기 때는 이런 행각도 보였다.

분리 독립 움직임

역사가 이렇다보니, 스코틀랜드는 영국에서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어왔다.

300년 이상 영국이라는 울타리에 있었던 스코틀랜드가 분리·독립하려는 이유는 민족적 감정에 더해 경제적 이유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스코틀랜드의 조선과 항만시설은 독일의 주요 공격목표가 되면서 큰 타격을 받으면서 전후 스코틀랜드 지역 산업이 무너졌다. 산업기반을 잃은 스코틀랜드의 경제는 잉글랜드에 비교해 낙후됐다. 1980년대 마가렛 대처 총리가 강력한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스코틀랜드 경제의 기반이던 철강과 조선 산업은 무너져 내렸다. 반면 런던의 금융 산업은 성장 발전하고 있었다. 이런 역사적 이유로 스코틀랜드의 민족주의와 분리 독립을 표방하는 국민당(SNP)이 지지를 얻기 시작했다. 국민당은 1999년 대영제국에게 스코틀랜드의 자치권을 인정받았고, 2011년에는 자치의회의 다수를 구성하면서 분리 독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2014년 9월 18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영국 서머타임)까지 이루어지는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찬반에 관한 투표. 개표 결과 '독립 반대' 표가 55.3%, '독립 찬성' 표가 44.7%로 최종 집계됐다. 반대표가 찬성표보다 약 10.6% 포인트나 높게 나온 것이다.

문화

킬트

–눈테러– –스커트랜드– 스코틀랜드의 상징하면 역시 킬트로, 남자가 입는 치마로 속에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 이 옷은 적과 싸울 때 자신의 거기를 꺼내보여 적으로 하여금 당황하게 하거나(…섹시코만도?), 혹은 용변시 빠르고 무리없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고. 하지만 사실 현재 우리가 아는 킬트라는 것은 근대에 현재의 모습으로 정립된 물건으로 정작 중세 때는 아예 다른 물건이었고6), 이후 각 가문별 킬트와 타탄 체크문양이 생겨나면서 마치 중세부터 전통있는 문양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7) 근데 이게 자리 잡은게 이상한이유인데 영국이 –바지가 있는데 남자가 치마(?)라니– 금지 시켰고 이에 자극받은 스코틀랜드인들이 –정신을 놓은건지– 반항심에 이걸 계속 착용하다보니 이렇게 된거라는 말도 있다. 뭐 정확한건 본인들이 알겠지만(…)

그 외 해기스, 백파이프로도 유명하며, 빵모자+백파이프+킬트 조합은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심볼이 되었다. 그리고 대표할 만한 스코틀랜드의 명물로는 그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가 있다.

음식

음식들이 상당히 느끼하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기후로 인해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탓에 육식을 주로 하는 편인데 때문에 대장 발병률이 굉장히 높다. 튀김을 좋아하는데 딥 프라이드 피자라는 음식이 있다.8) 캐러멜을 튀겨서 초콜렛에 찍어 먹거나, 아예 시판되는 초콜렛 바를 튀겨 먹기도 한다.9) 인생 한 번 도전해볼 가치는 있으나 후환은 책임 못 지는 괴식이라고…

언어

스코틀랜드어는 스코틀랜드 표준 영어(Standard Scottish English), 스코트어(Scots 혹은 Lowland Scots), 스코틀랜드 게일어(Scottish Gaelic 혹은 Highland Scots)의 세 가지 지역 언어가 존재한다.

스코틀랜드 표준 영어는 18세기 이후의 영국 표준 영어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즉 표준어에 가깝게 변한 방언. 스코트어는 중세 영어로부터 독자적인 발전을 하여 영어의 방언이 아니라 별개의 언어로 취급되기도 하는 방언인데, 이 두 언어/방언이 서로 양층언어의 관계이다. 세대/지역/발화 환경에 따라 스코틀랜드 표준영어와 스코트어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것. 여기에다가 서북부의 구석진 지역에서는 여전히 게일어가 사용되고 있어서10) 이 지역 주민들은 영어와 게일어 이중언어화자가 많다. 스코틀랜드 게일어로는 스코틀랜드를 Alba라고 한다. 발음은 /ˈalˠ̪apə/. 한국어로 옮기면 '알라바'에 가깝다. BBC에는 이 게일아 전용채널인 "BBC Alba"가 있다.

스코티시 액센트는 알아듣기가 꽤 힘들다. 판타지 계열 게임이나 영화에서 드워프들이 사용하는 억양은 노르딕 아니면 스코티쉬. "ㄹ" 그러니까 R이나 L발음을 조금 거칠게 구르는 게 특징.

인종차별 문제

켈트계임을 중요시하는 자존심 강한 곳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인종차별 문제는 거의 없다. 스코틀랜드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무엇보다도 그냥 시민권만 있으면 "너도 우리 스코틀랜드의 후손이야" 이런 식… 이런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을 증가시킨건 아일랜드의 영향이 크다. 19세기 아일랜드가 잉글랜드에게 개취급받는걸 보고 있었기에(…) 인종차별에 대한 반감이 크며, 얼마 없지만 혹시라도 인종차별이 문제가 되는 사건이 터지면 국민들 모두 자각하고 고치려고 하는 실정이다. 스코틀랜드계 황인, 흑인들도 많으며 1.5세나 2세 스코틀랜드인들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파키스탄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반감이 있으나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국민들도 그렇지만 정부에서 손발 걷고 고치려고 하는 실정이다. 그리고 바시르 아마드 같은 유명한 파키스탄계 정치인들도 있었다.11)

스코틀랜드 성씨

스코트인은 성 앞에 'Mac(맥)'이나 Mac을 줄인 'Mc'이 붙는다. 이를테면 맥도널드(McDonald), 매켄지(McKenzie), 매케이(McKay), 매클린(McLean), 매클라우드(McLeod), 맥밀런(McMillan), 매킨토시(McIntosh), 매케인(McCain), 처럼. Mac은 스코트 게일어로 '~의 아들'이란 의미를 지닌다.12) 지금이야 글로벌시대라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성이 맥 뭐시기면 스코트인 혹은 스코트계, 아니면 먼 조상이 스코트인이다. 아일랜드도 스코틀랜드와 같은 켈트계이기 때문에 아일랜드에서도 Mac Cárthaigh, Mac Dubhghaill, Mac Mathúna, Mac Piarais, Mac Réamainn, Mac Raghnaill 같이 Mac이 들어간 성씨를 쓰기도 한다.

  • 출처: 엔하위키- 스코틀랜드(CC BY-NC-SA 2.0)
1)
여기서 유래한 캐나다의 노바스코샤 주의 뜻이 라틴어로 새 스코틀랜드다
2)
하단의 프랑스와의 관계 부분 참조.
3)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s)을 보면 영국이야기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 여기의 북쪽 장벽이 이 하드리아누스장벽과 비슷하다. 잉글랜드인들이 북쪽의 스코틀랜드인을 야만인이라 무시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도 비슷하다.
4)
이 이야기를 그린 유명한 영화로는 멜 깁슨이 주연, 감독을 맡은 '브레이브 하트'가 있다. 다만 실제 역사와는 다른 내용이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5)
사실 이 다리엔 지역은 현대에 와서도 지구상 극한 오지 중 하나로,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잇는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가 끊어진 유일한 구간이다. 게다가 이곳을 탐험할 때는 여행자보험도 적용 안 되는 곳이기도 하다.
6)
현대 킬트의 원형이 되는 '그레이트 킬트'라는 의복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하위계층이 많았던 하이랜드인들이 주로 입던 옷이었고 주류계층인 로우랜드인은 미개인이나 입는 의복으로 보아 천시했다고.
7)
에릭 홈스봄의 만들어진 전통 참조.
8)
말 그대로 피자를 튀긴 음식이다(…).
9)
딥 프라이드 마스 바(Deep Fried Mars Bar). '마스바'라는 굉장히 유명한 초콜릿바를 튀김옷에 입혀 튀겨 먹는데… 의외로 맛있는 건 함정.
10)
뭐, 그래봤자 스코틀랜드 주민 전체 중의 1% 정도밖에 안 되지만 예전에는 일부 섬지역과 남동부를제외하고 모든 지역에서 게일어를 썼었다.
11)
스코틀랜드 국회에서 2007년에 글래스고 대표로 당선되었다.
12)
다른 지역의 작명법도 이와 비슷한데 아일랜드에서는 O'(O'Neill, O'Brien, O'Sullivan, 등)나 Ó, 그리고 잉글랜드에서는 아들을 뜻하는 son이 접미사로 붙는다.(Thompson, Johnson, Jackson 등) 또 피츠제럴드(Fitzgerald), 피츠존(Fitzjohn), 피츠클래런스(FitzClarence), 피츠로이(Fitzroy)와 같이 라틴어로 아들을 의미하는 '필리우스(Filius)'에서 유래한 '피츠(Fitz)'가 붙은 성씨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