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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증과 세크레틴 (Secretin in Autism)

세크레틴은 원래 스웨덴의 `페링 그룹'이 소화장애 진단 약으로 개발한 것으로 전혀 관련이 없는 자폐증 치료제로 연결되기 까지는 `빅토리 벡'이라는 자폐아 어머니의 2년여에 걸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폐아를 자식으로 두고 마음 고생만 하던 벡이 세크레틴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지난 96년 4월.

벡은 아들 파커(당시 3세)가 심각한 소화장애를 일으켜 메릴랜드 대학병원에 데리고 갔으며 이곳에서 위액을 분비하는 췌장 자극제인 세크레틴을 이용해 진단을 받았다. 진단결과 소화장애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10일 뒤 전혀 말을 못하던 파커가 '엄마, 아빠'를 발음하고 단어를 따라 말하는 등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좋아진 것을 발견하고는 크게 놀랐다.

벡은 담당의사에게 전화를 해 아들의 좋아진 상태를 설명했지만 왜 좋아졌는지를 설명하지 못했다.

이때부터 벡은 전문가들과 상담을 하고 도서관의 의학서적을 뒤지면서 세크레틴이 아들에게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결론에 도달했지만 의사들은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벡은 세크레틴 진단 3개월 뒤부터 아들의 상태가 더 이상 좋아지지 않자 '치료제가 개발될 때를 더이상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갖게 됐으며 자폐증 연구단체 등과 접촉해 자폐아를 둔 다른 부모들과 상의하기 시작했다.

벡은 담당의사에게 세크레틴을 다시 주사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1회에 한해 사용될 수 있는 것으로 미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중복사용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초래될지 알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거부당했다.

벡은 담당의사를 설득한 끝에 9개월만인 97년 1월 다시 세크레틴을 주사했으며 아들의 증상은 다시 호전되기 시작했다.

이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세크레틴이 자폐아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효과가 있다는 의학적 연구결과가 제시됐으며 자폐아를 둔 부모들 사이에서 실낱같은 희망의 약이 됐다.

벡은 작년 가을 `데이트라인 NBC'에 출연해 세크레틴에 관한 효능을 밝히면서 이를 찾는 부모들이 폭증해 품귀현상까지 빚어지고 있으며 가짜 세크레틴까지 등장할 정도가 됐다. 가격도 1회용 도매가가 179달러에 불과한 것을 4차례 주사해 주고 8천달러를 받아 장삿속을 챙기는 의사도 등장하고 있다.

세크레틴은 돼지의 장(腸)을 갈아 만든 일종의 호르몬으로 의학적으로 완전 규명된 것은 아니나 호르몬이 다양한 기능을 하고 세크레틴에 반응하는 뇌세포가 발견된 점으로 미뤄 세크레틴이 뇌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가능하다는 추론만 나와 있을 뿐이다.

자폐증 치료제로서의 세크레틴 특허권을 갖고 있는 벡은 자폐아의 부모가 경영해온 중소기업체인 레플리겐에 이를 넘기면서 '앞으로 10년뒤면 더 좋은 조건으로 넘길 수 있겠지만 그때가 되면 우리는 자식을 잃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희귀한 질병을 앓고 있는 자녀를 둔 부모의 절박함이 만들어낸 `로렌조오일'이 병의 진행만 멈추게 할 뿐 치료제가 될 수 없었던 것처럼 벡의 모정이 세크레틴을 이용한 자폐증 치료제 개발의 길을 열었지만 아직까지는 자폐증에 대한 완벽한 치료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의사들은 아직도 세크레틴의 효능에 대해 반박하고 있으며 세크레틴을 계속 주사받아온 벡의 아들도 자폐증 증상이 계속 호전되고는 있지만 또래의 정상아들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의 주인공, 세크레틴

세크레틴은 27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일종의 소화기 계통의 호르몬이다. 기능은 췌장의 소화액 분비, 간의 담즙 생산, 그리고 위장의 펩신(pepsin) 생산을 증가시킨다. 이 세크레틴은 원래 소화기 내과 의사들이 내시경을 할 때 보다 자세한 결과를 알기 위해 주사하는 물질이기도 하다.

앞의 기사에서 읽은 것처럼 1998년 위 내시경 검사 과정에서 세크레틴을 투여받았던 3명의 자폐증 환아에서 눈맞춤, 각성상태, 언어가 개선되었다는 사례가 논문 형태로 보고 된 후, 세크레틴은 자폐아동의 부모들로부터 열광적인 기대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이 세크레틴의 열풍이 불었음은 물론이다.

그 후 효과나 안전여부에 대한 검증이 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자폐아에게 세크레틴의 투여가 이루어졌다. 이런 배경에는 자폐증의 치료에서 다른 약물의 효과가 거의 만족스럽지 못했던 결과가 있다고 본다. 실제로 대부분의 약물치료는 자폐증 자체보다는 동반되는 여러 가지 증상의 개선을 목표로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져 왔다.

진짜 치료제인가, 가짜 만병통치약인가?

"Secretin: cure or snake oil for autism in the new millennium?(세크레틴, 21세기의 자폐증 치료제일 것인가? 가짜 만병통치약이 될 것인가?)"이라는 제목의 글이 의학저널에 실렸을 정도로 세크레틴은 자폐 관련 전문가와 부모들 사이의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부모들은 세크레틴을 구하지 못해 조급해했다. 필자를 포함한 의사들은 대부분 조심스러웠다. 일부는 회의적이기까지 했다. 왜 그랬을까?

1998년 Horvath 등의 연구에서 세크레틴이 자폐증에서 극적인 호전을 볼 수 있다고 보고 된 것이 필자가 아는 한 최초의 논문이다. 이 연구가 이루어진 방식은 소위 open-label case study이다. 즉, 투여하는 사람이나 투여받는 당사자 또는 보호자가 세크레틴을 투여받고 있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연구 대상이 된 숫자가 소수라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런 방법론의 한계를 알고 있었다.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 뿐더러, 연구자나 보호자의 선입견 또는 희망사항이 개입되기 때문에, 소위 위약 효과(placebo effect)가 결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 것이다.

특정한 치료법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를 알아보는 방법

이럴 때 사용되는 과학적인 연구방법이 소위 placebo-controlled, double-blind design이다.

위약 대조 또는 비교(placebo controlled)란 효과를 밝혀내고자 하는 약물과 위약의 효과를 비교하는 것으로, "이 약을 먹으면 좋아지겠지"라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약물의 심리적 효과를 배제하는 노력이다. 이중 맹검(double-blind)이란 투여하는 사람도, 투여받는 사람도 이 약물이 진짜 약인지, 위약인지를 알 수 없도록 실험상황을 설정하는 것이다. 역시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피실험자의 기대 효과나 연구자의 인위적인 부분(의도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을 배제하려는 목적이다.

그래서 1998년 이후 여러 자폐증 환자를 대상으로 세크레틴의 효과를 검증해보려는 과학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실망스러운 결과

앞에서 설명한 placebo-controlled, double-blind design으로 시행된 연구결과가 속속 보고 되고 있는 중이다. 1999년 Sandler 등은 합성 세크레틴(synthetic human secretin)을 투여했다. 위약에 비해 효과는 차이가 없었다. 2000년 Chez 등은 56명의 환아를 대상으로, 2000년 Dunn-Geier 등은 95명을 대상으로 세크레틴(porcine secretin)을 투여했지만 특별한 효과가 없다고 보고 하였다. 2001년 Roberts 등은 64명의 환아를 대상으로 세크레틴을 일회가 아닌 반복 투여 했을 때 어떤지를 연구하였지만, 역시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2001년 11월 Owley 등은 Chicago대학, California-Irvine 대학, Utah 대학등에서 이루어진 소위 "다기관, 이중맹검, 위약대조, 교차연구(multisite,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crossover design)" 결과를 보고 하였다. 만 3세부터 12세 사이의 56명의 환아를 대상으로 세크레틴 또는 위약을 처음에, 그리고 처음 주사한 것과는 다른 약을 4주 뒤에 투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연구다. 연구의 시작, 4주째, 8주째에 여러 가지 자폐행동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시행하였는데, 역시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문들

  • 주사된 세크레틴의 용량이 적어서가 아닐까? : 대부분의 연구에서 Horvath등이 효과가 있었다고 최초에 보고 한 용량 또는 그 이상을 사용했다. 용량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 그래도 일부 환아에서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 그렇다. 개선 가능한 특정한 "일부" 집단이 있을 수는 있다. 자폐증이란 다양한 원인으로 나타나는 최종적인 증상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증후군이다. 세크레틴과 연관된 문제에서 비롯된 자폐증의 특정한 유형이 규명된다면, 적어도 그런 아이들은 세크레틴 투여로 효과를 나타낼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은 아직 열려있다.

그래도 쓰고 싶다면?

어느 누구도 말릴 수 없다. 하지만,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사전 지식은 필요하다. 적어도 앞에서 설명한 잘 짜여진 연구결과를 알고 써야 한다. 부풀려진 기대는 그만큼 실망이 크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크레틴 외에도 부모의 입소문을 통해서, 매스컴을 통해서, 또는 상업적인 목적을 가진 특정한 집단의 의도에 의해서 열풍처럼 부모들을 들뜨게 했던, 아니 지금도 진행 중에 있는 소위 "효과적"이라는 자폐증 치료법들이 많다. 하지만, 다음 몇가지는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읽었던 세크레틴의 스토리를 "반면교사"로 말이다.

몇명의 소수에서 효과가 있었던 것을 근거로 특정한 질병에 치료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치료법, 한두사람 특정한 계파(?)에서만 실시하고 다른 다수는 인정하지 않는 소수만의 치료법, 특정인이 저술한 책은 나와있으나 공신력이 있는 저널에 실린 논문이 전혀 없는 치료법, 학술적인 인증과정을 생략하고 언론이나 광고매체를 먼저 타는 치료방법, 단정적으로 효과를 말하는 만병통치에 가까운 치료법, 이론은 그럴 듯 하지만 실제 치료 효과가 규명되지 않은 방법, 유난히 비용이 비싼 치료법, 효과만 강조하고 부작용이나 한계는 밝히지 않는 치료법…. 들이 우리 주위에는 너무나 많다. 또 하나의 세크레틴일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일부 독자는 이 부분에 대한 비난이나 반박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 사로잡혀서, 다시 말해 "귀가 얇아져서" 우왕좌왕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필자의 순수한 의도임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물론, 학자나 임상가들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여러 가지 경험적이고 이론에 입각한 치료방법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을 꼭 해야 될 것이다. 자폐증의 연구는 이제 출발선에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면 필자는 꼭 "두 번" 생각해본다.

참고문헌

  • Lightdale JR, Hayer C, Duer A, Lind-White C, Jenkins S, Siegel B, Elliott GR, Heyman MB.: Effects of intravenous secretin on language and behavior of children with autism and gastrointestinal symptoms: a single-blinded, open-label pilot study. Pediatrics 2001 Nov;108(5):90
  • Lightdale JR, Heyman MB : Secretin: cure or snake oil for autism in the new millennium? J Pediatr Gastroenterol Nutr. 1999 Aug;29(2):114-5.
  • Owley T, McMahon W, Cook EH, Laulhere T, South M, Mays LZ, Shernoff ES, Lainhart J, Modahl CB, Corsello C, Ozonoff S, Risi S, Lord C, Leventhal BL, Filipek PA. :Multisite,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trial of porcine secretin in autism.J Am Acad Child Adolesc Psychiatry. 2001 Nov;40(11):1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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