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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cmaxim487 [2012/10/31 02:19] 211.56.252.201tech:cmaxim487 [2016/07/12 00:56] (현재) – 바깥 편집 12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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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고사성어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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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청무대어(水淸無大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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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水:물 수. 淸:맑을 청. 無:없을 무. 大:클 대. 魚:고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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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말] 수지청즉무어(水至淸則無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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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가 (물을 숨기지 못해) 살 수 없다는 뜻으로, 사람이 너무 결백하면 남이 가까이하지 않음의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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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한 시대 초엽,《한서(漢書)》의 저자로 유명한 반고(班固)의 동생에 반초(班超)라는 무장이 있었다. 반초는 2대 황제인 명제(明帝)때(74년) 지금의 신강성(新疆省) 타림 분지의 동쪽에 있었던 선선국[ 善國:누란(樓蘭)]에 사신으로 다녀오는 등 끊임없이 활약한 끝에 서쪽 오랑캐 땅의 50여 나라를 복속(服屬)시켜 한나라의 위세를 크게 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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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는 그 공으로 4대 화제(和帝)때인 영원(永元) 3년(91)에 지금의 신강성 위구르 자치구의 고차(庫車:당시 실크로드의 요충)에 설치되었던 서역 도호부(西域都護府)의 도호(都護:총독)가 되어 정원후(定遠侯)에 봉해졌다. 도호의 직책은 한나라의 도읍 낙양(洛陽)에 왕자를 인질로 보내어 복속을 맹세한 서역 50여 나라를 감독 사찰(査察)하여 이반(離叛)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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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 14년(102), 반초가 대과(大過)없이 소임을 다하고 귀국하자 후임 도호로 임명된 임상(任尙)이 부임 인사차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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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역을 다스리는 데 유의할 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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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초는 이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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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네 성격이 너무 결백하고 조급한 것 같아 그게 걱정이네. 원래 '물이 너무 맑으면 큰 물고기는 살지 않는 법[水至淸則無大魚]'이야. 마찬가지로 정치도 너무 엄하게 서두르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네. 그러니 사소한 일은 덮어두고 대범하게 다스리도록 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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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상의 반초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묘책을 듣고자 했던 기대와는 달리 이야기가 너무나 평범했기 때문이다. 임지에 부임한 임상은 반초의 조언을 무시한 채 자기 소신대로 다스렸다. 그 결과 부임 5년 후인 6대 안제(安帝) 때(107년) 서역 50여 나라는 모두 한나라를 이반하고 말았다. 따라서 서역도호부도 폐지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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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전]《後漢書》〈班超專〉,《孔子家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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