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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cmaxim266 [2014/03/18 17:37] – 바깥 편집 127.0.0.1 | tech:cmaxim266 [2016/07/12 00:56] (현재) – 바깥 편집 127.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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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고사성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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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금의야행(錦衣夜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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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방(劉邦)에 이어 진(秦)나라의 도읍 함양(咸陽)에 입성한 항우(項羽)는 유방과는 대조적인 행동을 취했다. 우선 유방이 살려 둔 3세 황제 자영(子孀)을 죽여 버렸다(B.C. 206). 또 아방궁(阿房宮)에 불을 지르고 석 달 동안 불타는 그 불을 안주 삼아 미녀들을 끼고 승리를 자축했다. 그리고 시황제(始皇帝)의 무덤도 파헤쳤다. 유방이 창고에 봉인해 놓은 엄청난 금은 보화(金銀寶貨)도 몽땅 차지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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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처럼 제왕(帝王)의 길로 들어선 항우가 이렇듯 무모하게 스스로 그 발판을 무너뜨리려 하자 모신(謀臣) 범증(范增)이 극구 간했다. 그러나 항우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오랫동안 누벼온 싸움터를 벗어나 많은 재보와 미녀를 거두어 고향인 강동(江東)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러자 한생(韓生)이라는 사람이 간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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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말을 전해 들은 항우는 크게 노하여 당장 한생을 삶아 죽였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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