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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2014/08/25 02:32] – fe80:4852:64df:b1dd:fe73:ca34:7c28:eae5 | 조선왕조 [2018/02/22 03:30] (현재) – 바깥 편집 127.0.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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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한제국의 역대 군주의 칭호는 대개 묘호로 불린다. 묘호를 올릴 때 공(功)이 있는 경우에는 ' | 조선·대한제국의 역대 군주의 칭호는 대개 묘호로 불린다. 묘호를 올릴 때 공(功)이 있는 경우에는 ' | ||
- | * 조선시대(朝鮮, | + | |
^代^왕명^재위기간^약사^ | ^代^왕명^재위기간^약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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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나라와 [[사대]]관계에 있던 조선은 세자책봉 시 명나라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처음에는 통보만 하면 되는 통과의례 정도로 여겨졌으나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 조선을 도와준 뒤에는 세자책봉에 대한 명나라의 ' | + | 명나라와 [[사대교린|사대관계]]에 있던 조선은 세자책봉 시 명나라의 승인을 얻어야 했다. 처음에는 통보만 하면 되는 통과의례 정도로 여겨졌으나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군대를 보내 조선을 도와준 뒤에는 세자책봉에 대한 명나라의 '**심사**'가 엄격해졌다. |
일례로, 후궁 소생의 차남인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 일례로, 후궁 소생의 차남인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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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는 의인왕후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공빈 김 씨 소생의 광해군을 세자로 발탁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왜적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장남 임해군 대신 위기관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판단해 광해군을 선택한 것. 하지만 명은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세자책봉 승인을 미뤘다. 선조의 급사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사절단을 보내자 명은 "왜 승인받지 못한 차남이 즉위했느냐" | 선조는 의인왕후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공빈 김 씨 소생의 광해군을 세자로 발탁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해 왜적이 파죽지세로 북상하자 장남 임해군 대신 위기관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판단해 광해군을 선택한 것. 하지만 명은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세자책봉 승인을 미뤘다. 선조의 급사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사절단을 보내자 명은 "왜 승인받지 못한 차남이 즉위했느냐" | ||
- | 조선의 이 같은 [[사대]]외교를 자주적인 실리외교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 + | 조선의 이 같은 [[사대교린|사대외교]]를 자주적인 실리외교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고, 현대적 관점에서 보고 부끄러운 일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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