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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교린 [2014/08/25 11:39] V_L사대교린 [2018/02/22 12:00] (현재) – 바깥 편집 12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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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g>사대교린 사대}}
 ====== 사대교린(事大交隣) ====== ====== 사대교린(事大交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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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대교린은 조선 전기에 확립되었지만 그 형태는 오래되었다. 고구려도 한나라(32년), 북위, 수나라 등 중국에서 강성한 왕조가 들어서면 조공 책봉관계를 맺고 외교적 이익을 취하였으며, 고려도 송나라나 금나라가 강성할 때는 이러한 외교관계로서 국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주변 약소 민족에게 회유와 토벌 정책을 실시하였다. 사대교린은 조선 전기에 확립되었지만 그 형태는 오래되었다. 고구려도 한나라(32년), 북위, 수나라 등 중국에서 강성한 왕조가 들어서면 조공 책봉관계를 맺고 외교적 이익을 취하였으며, 고려도 송나라나 금나라가 강성할 때는 이러한 외교관계로서 국제적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주변 약소 민족에게 회유와 토벌 정책을 실시하였다.
  
 +{{http://arim.pe.kr/7history/text/images/chap3/108-1.JPG|조선초기 사대교린정책}}
  
 중국은 진시황 이래로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뒤쳐지게 된 근대를 제외하면 기나긴 역사 동안 중국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월등히 한반도 국가를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문화를 발전시키는게 이득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한족국가와의 교류는 전통적으로 사대의 형식으로만 가능했으며, 신하를 자처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 동등한 관계에서의 외교란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대"는 외교의 한 형식일 뿐이었고, 한족과 맞짱떴던 무수한 이민족 국가들이 일시적으로 중국을 정복했다가도 대부분 동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한반도 국가들은 "사대"의 형식으로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중국은 동아시아의 질서에서 현재의 미국보다도 더 큰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자주성을 지상으로 삼아 중국과 적대를 계속 해왔다면, 현재의 북한과 같이 중2병스러운 국가가 될 뿐이고, 고구려꼴나서 문화가 사그라들어 결국은 만주처럼 중국의 일개 지방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중국은 진시황 이래로 동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뒤쳐지게 된 근대를 제외하면 기나긴 역사 동안 중국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월등히 한반도 국가를 앞서 있었기 때문에, 이들과 교류를 하면서 문화를 발전시키는게 이득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한족국가와의 교류는 전통적으로 사대의 형식으로만 가능했으며, 신하를 자처했을 때만 가능한 것이지 동등한 관계에서의 외교란 불가능했다. 그런 의미에서 "사대"는 외교의 한 형식일 뿐이었고, 한족과 맞짱떴던 무수한 이민족 국가들이 일시적으로 중국을 정복했다가도 대부분 동화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한반도 국가들은 "사대"의 형식으로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다. 중국은 동아시아의 질서에서 현재의 미국보다도 더 큰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자주성을 지상으로 삼아 중국과 적대를 계속 해왔다면, 현재의 북한과 같이 중2병스러운 국가가 될 뿐이고, 고구려꼴나서 문화가 사그라들어 결국은 만주처럼 중국의 일개 지방으로 전락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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