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문서의 선택한 두 판 사이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차이 보기로 링크

양쪽 이전 판이전 판
다음 판
이전 판
박종철 [2015/02/21 09:00] V_L박종철 [2021/08/01 00:46] (현재) – 이전 판으로 되돌림 (2015/02/20 19:44) 172.70.122.207
줄 1: 줄 1:
-{{page>틀:사건사고}} 
- 
 ====== 박종철 ====== ====== 박종철 ======
  
-박종철(朴鍾哲, 1964년 4월 1일 ~ 1987년 1월 14일, 부산광역시 출생)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그는 제5공화국 말기에 공안당국에 붙잡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받다가 죽임을 당했다. 당시 이 사실을 은폐하려던 군사독재정권의 불의는 당연히 민중들의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항의인 6월 항쟁의 계기가 되어, 시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자인 노태우가 직선제 개헌요구를 받아들여  6·29 선언(六二九宣言)을 1987년 6월 항쟁 직후인 6월 29일 발표하게 되었다.+박종철(朴鍾哲, 1964년 4월 1일 ~ 1987년 1월 14일, 부산광역시 출생)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학생회장이던 그는 제5공화국 말기에 공안당국에 붙잡혀 폭행과 전기고문, 물고문 등을 받다가 죽임을 당했다. 당시 이 사실을 은폐하려던 군사독재정권의 불의는 당연히 민중들의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항의인 6월 항쟁의 계기가 되어, 시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에 부딪혔고, 결국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민주화 요구를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줄 90: 줄 88: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과 중앙도서관 사이에는 박종철이 당했던 고문을 형상화한 박종철 열사 기념비와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그게 박종철 기념비인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 사실 대다수의 학생은 관심도 없을 것이다. 일부 단과대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학교 탐방을 할 때 꼭 지나가는 코스이기는 하다. 현재 서울대학교 인문대학과 중앙도서관 사이에는 박종철이 당했던 고문을 형상화한 박종철 열사 기념비와 흉상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은 그게 박종철 기념비인지 뭔지 전혀 모르는 상태. 사실 대다수의 학생은 관심도 없을 것이다. 일부 단과대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으로 학교 탐방을 할 때 꼭 지나가는 코스이기는 하다.
  
-당시 총학은 **[[좌빨#NL]]계열**이 주로 장악했었기 때문에 NL계열의 '열사'들만 추모비를 크게 건립하고 박종철은 사안이 중요함에도 **[[좌빨#PD]]계열**이라 작게 건립했었다.(( 여담으로 박종철은 PD계열이라기 보다 [[CA]] (제헌의회)계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PD가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87년 이후이며 이전까지는 NL과 CA가 대치하고 있는 국면이었다.)) +당시 총학은 **[[NL]]계열**이 주로 장악했었기 때문에 NL계열의 '열사'들만 추모비를 크게 건립하고 박종철은 사안이 중요함에도 **[[PD]]계열**이라 작게 건립했었다는 [[카더라]]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여담으로 박종철 열사는 PD계열이라기 보다 [[CA]](제헌의회)계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PD가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게 되는 것은 87년 이후이며 이전까지는 NL과 CA가 대치하고 있는 국면이었다.)) 
  
  
줄 96: 줄 94:
 [[김수환]] 추기경은 '박종철군 추모와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아들, 너희 제자,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고 강론하며 고문 혐의를 부인하던 당국자들을 향해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라고 일갈해 공권력을 꾸짖기도 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박종철군 추모와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면서 "지금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 아들, 너희 제자, 너희 젊은이, 너희 국민의 한 사람인 박종철은 어디 있느냐?"고 강론하며 고문 혐의를 부인하던 당국자들을 향해 **"바로 카인의 대답입니다"**라고 일갈해 공권력을 꾸짖기도 했다.
  
-안상수 前의원은 당시 이 사건의 담당검사였고, 이후 문민정부 하에서 신한국당(이후 한나라당)으로 자신이 **주동적**으로 사건 은폐를 막았다고 하다.+[[크라잉 넛]]의 노래인 [[지독한 노래]]에 나오는 가사 **"탁 치니 억 죽고 물 먹이니 얼싸 죽고 사람이 마분지로 보이냐"**는 이 사건을 비꼰, 아니 깐 것이다.  
 + 
 + 
 +안상수 前의원은 당시 이 사건의 담당검사였고, 이후 문민정부 하에서 신한국당(이후 한나라당)으로 자신이 **주동적**으로 사건 은폐를 막았다고 주장고 있으나, 조국 서울대 교수는 안상수가 아니라 그 상관인 최환 부장검사가 박종철 시신의 부검을 지시하여 이의 은폐를 막았다고 반박했다. 
 + 
 +여담으로 [[서울대학교]] [[조국]] [[교수]]는 박종철의 고등학교, 대학교 직속 선배 관계이다. 그런데 학교(학령기 시작 연도)는 한살 더 일찍 들어왔고 박종철은 재수하여 선배지만 나이는 더 어리다. 여튼 그의 진보적 성향에는 후배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고 이후 [[제18대 대통령 선거]] 찬조 연설에 본인이 직접 나와서 이때의 경험이 자신의 정치성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종철이 고문당하고 죽은 이유가 된 운동권 '선배' 박종운은 놀랍게도 2000년에 [[한나라당]]에 입당해 [[부천시]] 오정구 지구당위원장이 되었다.  비록 박종운이 이부영 의원의 천거를 받아 민정계 인사를 제치고 공천을 받았다지만, 박종철이 왜 죽었는지, 한나라당의 주류가 누구인지를 아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박종운은 16대~18대 총선에서 내리 3연패를 하며 '오정의 낙선왕'이라는 야유와 함께 정계를 떠난다.+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박종철이 고문당하고 죽은 이유가 된 운동권 '선배' 박종운은 놀랍게도 2000년에 [[한나라당]]에 입당해 [[부천시]] 오정구 지구당위원장이 되었다. 박종철을 죽게 한 5공화국 정권의 여당 [[민주정의당]]은 [[3당 합당]],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거쳐 한나라당으로 바뀌었는데, 그 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 것. 비록 박종운이 이부영 의원의 천거를 받아 민정계 인사를 제치고 공천을 받았다지만, 박종철이 왜 죽었는지, 한나라당의 주류가 누구인지를 아는 이들에게는 충분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박종운은 16대~18대 총선에서 내리 3연패를 하며 '오정의 낙선왕'이라는 야유와 함께 정계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