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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사드 (Mossad)

1948년 6월 초대 책임자를 레우벤 실로아흐로 하여 외무부 산하 정치국으로 출범하고, 이후 1949년 12월 13일에 정치국을 확대개편하여 정보조정연구소(the Institude for Coordination, '모사드'는 Institude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 재출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식명칭은 '중앙공안정보기관(Central Institute for Intelligence and Security, המוסד למודיעין ולתפקידים מיוחדים)'으로, 제2차 세계대전나치의 집단학살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이주시키기 위해서 1949년 다비드 벤 구리온 총리의 제안으로 설립되었다. 초대 의장은 레우벤 실로아흐(ראובן שילוח). 이후 1951년에는 총리 직속기구로 재편되었다. 그래서 현재의 모사드의 창설연도를 1951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휘하에 현장투입 및 암살팀인 '키돈'과, 통신감청 전문기술팀 '야호로민', 해당 공작 지역에서 모사드를 도와주는 유대인들인 '캇차'와 '사얀'/'사야님', 그리고 도처에서 운용하고 있는 각국 국적의 모사드 정보원들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53년에 취임한 2대 의장 이세르 하렐(Isser Harel)이 전문가 조직으로 발전시켰으며, 외국에서의 첩보활동·정보수집·비밀정치공작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1960년 나치의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잠복지인 아르헨티나에서 체포했으며, 1972년 9월의 뮌헨 올림픽 사건에 관여한 검은 9월단 일원 13명을 7년 동안 추적하여 암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와중에 모사드는 1973년 노르웨이에서 모로코인 웨이터 아흐메드 부치키를 검은 9월단의 지도자 중 하나인 알리 하산 살라메로 착각해서 살해하기도 했다. 아흐메드 부치키를 살해한 요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르웨이 당국에 체포당했으며, 이 사건으로 인해 모사드는 유럽 내 활동에 지대한 타격을 입었다. 1996년 이스라엘 정부는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불했다. 비록 공식적으로 이 사건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중동전쟁에서 큰 공을 쌓은 이스라엘 스파이 엘리 코헨의 형 모리스 코헨도 모사드 요원이었다. 하지만 아우가 시리아에서 교수형당하는 걸 그저 TV화면으로 바라봐야 했다.

1980년대 말~1990년 대 중반은 모사드에게 암울한 기간이었다. 벌여 놓은 각종 작전이 실패해 언론에 알려져 망신을 당해 국장이 여러차례 교체되기도 했다.

그러다 2002년 메이어 다간이 국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부활의 계기를 맞는다. 취임사는 "적의 뇌를 삼켜라."

픽션 속의 모사드 요원

  • 출처: 엔하위키- 모사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