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서 아버지의 역할

어머니는 힘도 없고 결정권도 없고 하는 일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무슨 이유로 어머니만을 우상화해서 대단한 존재로 부각시키고 정작 힘이 있고 능력이 있고 그래서 중요한 일을 도맡아하는 아버지에 대한 말은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아버지, 그렇다. 아버지는 대단한 존재다. 필자도 아버지 중의 한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대단한 존재가 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특히 아버지는 돈을 벌어 오고 집안의 어려운 일을 처리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는데 있어서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가정에서 아버지가 차지하는 위치가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거치장스러운 편견을 버리고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 어른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아버지에 대한 것을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어떨까?

아버지는

  • 돈을 잘 벌어 오신다.
  • 술에 취해 밤늦게 오신다.
  • 화를 잘 내신다.
  • 어머니와 자주 싸우신다.
  • 무섭다.
  • 늦잠을 많이 주무시고 게으르시다.
  • 친절하고 용돈을 잘 주신다.
  • 구두쇠이시다.
  • 어머니와 우리를 정말로 사랑한다.
  • 야단을 치시고 잘 때리신다.
  • 인정이 많고 상냥하시다.
  • 부지런하고 우리들과 함께 노시는 것을 좋아한다.
  • 쉬는 날이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지내신다.

만일 우리 아이들에게 위에 열거한 설문을 주고 우리 아버지에게 해당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것을 선택할까? 긍정적인 것을 많이 선택할까? 부정적인 것을 많이 선택할까? 아버지들이 들으면 섭섭한 말이 될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대답은 대부분 부정적인 것이 많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의 아버지들이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필자가 직접 물어 본 아버지에 대한 자시들의 의견이 그러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상이 그렇게 때문에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하는 자식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러한 아이들을 탓할 수만은 없다.

그리고 만일 아버지들에게 위의 설문 중 자신에게 해당되는 것을 선택하라고 하면 어떤 것들을 선택할까? 잘은 모르겠지만 아버지 자신들도 자신들의 가족과 관련된 일상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우세할 것으로 추측된다.

이러한 질문은 조금은 잔인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에게 만일 부득이한 일이 생겨서 아버지와 어머니 중 한 사람하고만 살 수 있다면 누구하고 살기를 원하는가? 아버지? 아니면 어머니? 아마도 100명의 아이 가운데 100명 모두가 어머니하고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그 아버지의 느낌은 어떠할까? 자식의 나이가 많고 적고에 관계없이 모든 아이는 어머니하고 살려고 한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자식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인품을 지닌 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그렇다면 아버지의 위치는 가정의 어디쯤에 있을까? 미안하지만 아버지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 일 정도’로 그 존재가치가 미세하다. 자식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는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고 어머니의 파트너일 뿐이다. 그래서 먹고 살 돈만 있다면 아버지가 없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다만 어머니의 경우가 어려워 질 것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될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없어진다면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답답할 사람은 어머니 한 사람뿐이다. 우선 돈을 벌어 올 장본인이 없어졌다는데 문제가 있고 다음으로는 정을 나눌 파트너가 없어졌다는데 문제가 있다.

돈과 정은 있을 때에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지만 없을 때에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으로 부각된다. 삶을 위해서 극히 필요한 것 모든 사람에게 없어서는 아니 될 것이 돈과 정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없어서 어머니가 돈이 없고 정에 굶주린다면 돈이 없고 정에 굶주린 것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한 나머지 아이들이 짐스러워지고 세상이 귀찮아질 것이다. 그러한 어머니는 아이들을 제대로 양육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가정의 어느 구석에 구겨져 있는 사람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가정의 생존과 질서 그리고 안녕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버지를 고려한다면 그 아버지는 단연 위대한 존재이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해야 할 일이 없다. 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잘 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어머니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잘 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벌어 들여야 하고 어머니를 많이 사랑해 줌으로서 어머니로 하여금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어머니는 아이를 잘 기를 수 있다. 아이를 잘 기르지 못하는 어머니는 일반적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들은 마치 새끼 오리들만 거닐고 다니는 어미 오리처럼 아버지 오리를 귀찮게 생각하는 이상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만 있으면 살 것 같은 어머니의 느낌이 아버지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여 ‘오리가족’ 현상을 낳게 한다.

어머니와 아이들로부터 소외당한 아버지는 가정에 대한 애틋한 정을 가질 수 없다. 애틋한 정을 갖지 못한 아버지들, 그 아버지들은 외롭고 괴롭다 못해 답답하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막힌 숨통을 틔우기 위해 밖으로 나돈다. 가족외적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가 어찌 행복할 수 있겠는가?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이 잘 융합되었을 때 가족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다. 가족이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가족을 생각해 주겠는가?

어머니는 아버지를 가족내적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아버지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보다 귀하게 여기고 서로가 필요한 것을 충분히 주고 받을 때 비로소 그 가족은 가족다운 기능을 하는 가족이 될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