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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ch:잘못된_과학_상식들 [2015/04/12 14:03] – [갈릴레이와 자유낙하] 119.198.237.82tech:잘못된_과학_상식들 [2016/07/12 09:26] (현재) – 바깥 편집 127.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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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레이와 자유낙하===== =====갈릴레이와 자유낙하=====
  
-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물체의 낙하실험을 하였다."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업적은 매우  많으나,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벼운 물체나  무거운 물체나 같은 속도로 낙하" 한다는 사실을 밝혀서, 기존의 아리스토텔 레스의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 는 이론을 깨고, 근대적 역학법칙의  기초를 세운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 기로, 갈릴레이는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 두 공의 낙하를  실제로 실험하여, 이것 을  증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과학사의 대표적 사례이다.  사실 피사의 사탑은 갈릴레이가 생존했던  시대에도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고 하니, 물 체의 낙하 실험을 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갈릴 레이는 그곳에서 물체의 낙하실험을 한 적이 없다. (갈릴레이의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려다 보니 생겨난 이야기거나, 혹은 피사의 사탑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이려고 이탈리아 관광당 국에서 퍼뜨린 것이거나 ...) 갈릴레이는 물체의 낙하에 관하여 그의 대표적 저서 "두개의 새로운 과학에 관한 대화" 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만약 무거운 물체 가 먼저 땅에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서로 연결해서 떨어뜨리는 경우를 고려해 본다면,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려 하고 가벼운 물체는 그보다 늦게 떨어지려  할 것 이므로, 그 결과는 처음의 무거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늦고, 가벼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빨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으로는 두 물체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전체 무게는 더욱 무거워 져서 더욱 빨리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도 나온다. 하나의 가정에서 이처럼 상반된 두 결론이 나왔으므 로, 그것은 애초의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동시에떨어져 야 옳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갈릴레이는 이처럼, 실험에 앞서서 논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중세의 역학이론을 지배해 온 "무거운 물체일수록 빨리  떨어진다." 는 설이 명백한 잘못임을 밝혔던 것 이다. 실제로 두 개의  납공을 떨어뜨려서 (그것도 피사의 사탑이 아닌, 2층 창문에서) 실험한  인물은 시몬 스테판이라는 네덜란드인 인데, 갈릴레이의 제자가 쓴 "갈릴레오전"에서, 저자가 스승의 업적을 찬양하려는 나머지, 그만 다른 사람의 업적까지 혼동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물체의 낙하실험을 하였다."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업적은 매우  많으나,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벼운 물체나  무거운 물체나 같은 속도로 낙하" 한다는 사실을 밝혀서, 기존의 아리스토텔 레스의 "무거운 물체가 먼저 떨어진다." 는 이론을 깨고, 근대적 역학법칙의  기초를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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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로, 갈릴레이는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 두 공의 낙하를  실제로 실험하여, 이것을  증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과학사의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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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피사의 사탑은 갈릴레이가 생존했던  시대에도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고 하니, 물 체의 낙하 실험을 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갈릴 레이는 그곳에서 물체의 낙하실험을 한 적이 없다. (갈릴레이의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려다 보니 생겨난 이야기거나, 혹은 피사의 사탑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이려고 이탈리아 관광당 국에서 퍼뜨린 것이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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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레이는 물체의 낙하에 관하여 그의 대표적 저서 "두개의 새로운 과학에 관한 대화" 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만약 무거운 물체가 먼저 땅에 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서로 연결해서 떨어뜨리는 경우를 고려해 본다면,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어지려 하고 가벼운 물체는 그보다 늦게 떨어지려  할 것이므로, 그 결과는 처음의 무거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늦고, 가벼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빨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두 물체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전체 무게는 더욱 무거워져서 더욱 빨리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도 나온다. 하나의 가정에서 이처럼 상반된 두 결론이 나왔으므로, 그것은 애초의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나 가벼운 물체나 동시에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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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릴레이는 이처럼, 실험에 앞서서 **논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중세의 역학이론을 지배해 온 "무거운 물체일수록 빨리  떨어진다." 는 설이 명백한 잘못임을 밝혔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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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로 두 개의  납공을 떨어뜨려서 (그것도 피사의 사탑이 아닌, 2층 창문에서) 실험한  인물은 **시몬 스테판**이라는 네덜란드인 인데, 갈릴레이의 제자가 쓴 "갈릴레오전"에서, 저자가 스승의 업적을 찬양하려는 나머지, 그만 다른 사람의 업적까지 혼동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노벨과 다이나마이트===== =====노벨과 다이나마이트=====
  
- "노벨은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기를 바랐으나, 인명살상용 군사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하고 가슴 아파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유산을 털어서 인류 평 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라는 노벨상을 제정하였다." 우리가 자주 들어 온 위의 이야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두 가지나 있다. 째는 "다이너마이트"가 군사무기로 이용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노벨이 자신의 발명품이 군사용 무기로 쓰이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아버지대부터 화약의 생산에 종사했으며 처음에는 액체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제조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조금만 흔들어도 폭발하는 아주 위험한 것으 로서,  노벨의 공장에서도 몇차례 폭발사고가 일어나서 그의 동생이 죽기도 하였고 세계 각국의 공장, 창고 등에서도 심각한 폭발사고가 잇달았다. 안전한 폭약을 만들려고 노력하던 노벨은 고심끝에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삼투시킨 폭약을 발명하여 1867년에 특허를 취득하였다. 이것이  곧 다이너 마이트인데, 흔들거나  두들겨도, 심지어 불을 붙여도 반응이 없고 뇌관을  쓰지 않으면 폭발시킬 수 없다. 따라서 토목이나 건설, 광산 등지에서 널리 쓰여져 노벨은 곧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둔감한  폭약"은 군사용 무기로 쓰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다. 설사 쓴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인명살상보다는 포대, 진지의 폭파 등에 제한적으로 이용되는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노벨은 적극적으로 군용화약의 개발에도 힘을 쏟았으며  1887년에 발명한 무연화약은 총포, 기뢰, 폭탄 등에 쉽게  쓰일 수 있었다. 노벨은 이 우수한 군용화약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세계 각국에 널리 수출 까 지 하였다. 물론 노벨 자신은 전쟁을 싫어한 "평화주의자" 였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모조리 부숴 버릴 가공한 힘을 가진 물질 이나 기계를 만들고 싶다. 그것으로 적과 우군이 1초동안에 서로  상대방을 말살할 수 있게 된다면, 모든 문명국들은 공포를 느낀 나머지  전쟁을 외면하고 군대를 해산할 것이다." 마치 핵무기가 있기때문에 "무장평화"가 유지된다는 식처럼, 살상효과가 큰 병기를 개발할수록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노벨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 "노벨은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기를 바랐으나, 인명살상 용 군사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하고 가슴 아파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유산을 털어서 인류 평 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라는 노벨상을 제정하였다." 우리가 자주 들어 온 위의 이야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두 가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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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째는 "다이너마이트"가 군사무기로 이용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노벨이 자신의 발명품이 군사용 무기로 쓰이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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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아버지대부터 화약의 생산에 종사했으며 처음에는 액체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제조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조금만 흔들어도 폭발하는 아주 위험한 것으로서,  노벨의 공장에서도 몇차례 폭발사고가 일어나서 그의 동생이 죽기도 하였고 세계 각국의 공장, 창고 등에서도 심각한 폭발사고가 잇달았다. 안전한 폭약을 만들려고 노력하던 노벨은 고심끝에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삼투시킨 폭약을 발명하여 1867년에 특허를 취득하였다. 이것이  곧 다이너 마이트인데, 흔들거나  두들겨도, 심지어 불을 붙여도 반응이 없고 뇌관을  쓰지 않으면 폭발시킬 수 없다. 따라서 토목이나 건설, 광산 등지에서 널리 쓰여져 노벨은 곧  큰 부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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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이처럼 "둔감한  폭약"은 군사용 무기로 쓰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다. 설사 쓴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인명살상보다는 포대, 진지의 폭파 등에 제한적으로 이용되는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노벨은 적극적으로 군용화약의 개발에도 힘을 쏟았으며  1887년에 발명한 무연화약은 총포, 기뢰, 폭탄 등에 쉽게  쓰일 수 있었다. 노벨은 이 우수한 군용화약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세계 각국에 널리 수출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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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노벨 자신은 전쟁을 싫어한 "평화주의자" 였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무엇이든 모조리 부숴 버릴 가공한 힘을 가진 물질이나 기계를 만들고 싶다. 그것으로 적과 우군이 1초동안에 서로  상대방을 말살할 수 있게 된다면, 모든 문명국들은 공포를 느낀 나머지  전쟁을 외면하고 군대를 해산할 것이다." 마치 핵무기가 있기때문에 "무장평화"가 유지된다는 식처럼, 살상효과가 큰 병기를 개발할수록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노벨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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