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1989년 일본 사회는 '1.57 쇼크'에 사로잡혔다. 출산율이 1.57명으로 떨어지면서 심각한 인구 감소 위기에 직면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는 1.57쇼크를 저출산의 재앙에 대한 경고로 보고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역부족이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저출산의 여파는 요즘 일본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1980년 2800만명이던 0~14세 유소년 인구는 30여년 만에 1700만명으로 줄었다.

한국의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인 1.22명으로 일본과 비슷한 인구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레져산업 불황

저출산으로 인해 어린이와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테마파크·스키장 등 레저산업도 반 토막이 나고 있다. 어린이 인구가 줄면서 동물원 관람객은 1970년대의 반 이하로 줄었고 스키장·볼링장·수영장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대학감소

1990년 200만명이 넘던 18세 인구(대학 진학 인구)는 최근 120만명까지 급감했다. 그 결과 일본 대학의 40%가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대학 진학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어 앞으로 10년 내에 100여개 대학이 문을 닫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3년제인 단기 대학은 학생 수 감소로 지난 10여년 사이에 이미 200여개가 문을 닫았다.

늘어나는 빈집

저출산·불경기로 수요 줄어

조선일보 | 도쿄 | 입력 2011.07.12 03:13 | 수정 2011.07.12 13:36

도쿄 (東京) 도심에서 전철로 1시간 거리인 요코스카(橫須賀)시 시오이리(汐入)역. 대형 백화점과 호텔이 있는 상가 거리를 빠져나와 10분쯤 걸어가면 '시오이리마치고초메(汐入町五丁目)라는 동네가 나온다. 요코스카의 항구가 내려다보이는 역세권 주택가이다. 동네 초입에 들어서면 이상하리만큼 인기척이 없다. 동네 입구에 있는 2층 임대주택용 건물 입구에 있는 우편함은 모두 텅 비어 있다. 현관 옆에 설치된 전기계량기도 돌지 않는다.

주변의 단독주택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로 들어가자 마당이 잡초로 뒤덮여 있거나 창문이 깨진 빈집들이 보였다. 한 주민은 "집주인이 죽거나 이사를 가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없어서 빈집이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코스카시가 최근 이 동네 주택을 전수조사한 결과 287채 중 53채가 비어 있었다. 다섯 집 중 거의 한 집이 빈집인 셈이다.

저출산의 여파로 일본에 '빈집 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연간 약 20만 채씩 빈집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분당(11만채)의 약 2배에 해당한다. 주택 마련이나 집을 넓히려는 욕구가 가장 왕성한 40대 인구가 1990년 2000만명에서 최근 1600만명까지 감소하는 등 주택수요가 전반적으로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 국토교통성 조사에 따르면 2008년에 전국의 집 5711만9170채 중 13%가 넘는 756만여채가 빈집이었다. 올해는 800만채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빈집 증가와 경기침체로 인해 일본 주택가격은 20년 만에 반 토막이 났지만 저출산에 자가 주택 소유에 연연해 하지 않는 단독세대 증가까지 겹치면서 주택 가격의 추가하락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정부는 최근 '국토의 장기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연간 출생자가 1970년대 200만명대에서 최근 100만명대로 급감함에 따라 올해 출생자들이 내 집 마련 수요자로 전환되는 40년 후에는 빈집이 1500만채를 넘어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집만 비어가는 것이 아니다. 사무실 공실률도 10%를 넘는다.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이 속출하면서 도로, 댐 등 인프라 건설투자도 반으로 줄었다. 일본의 전체 건설투자비는 1992년 84조엔까지 치솟았지만, 2010년에 41조엔까지 감소했다. 국토교통성은 인구감소가 본격화됨에 따라 건설투자가 신규건설에서 유지관리 중심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농지이용률 감소

저출산으로 인해 일본 의 지방 인구 감소가 본격화되면서 '경작포기지'가 급증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일본의 농지이용률은 1995년 97.7%에서 2010년 92.1%로 15년 사이에 5.6%가 줄었다. 이 기간 전체 농지 면적이 504만㏊에서 459만㏊로 줄어 45만㏊(4500㎢)의 경작포기지가 발생했다.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인구 감소가 가속화하고 있어 40년 후에는 현재 주거지의 약 20%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방치된 농경지는 잡초가 자라는 등 야생 상태로 바뀌면서 야생동물의 서식지로 바뀌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곰, 멧돼지 등의 습격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급증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연간 50명 수준이던 곰 습격 피해자가 작년에는 150여명으로 급증했다.

일본 농림수산성은 올해 4월 '경작포기지 재생이용 대책'을 발표하고 황폐한 농지를 되살리기 위한 지원정책을 내놓았다. 농지 재생작업을 하는 농민들에게 1000㎡당 2만5000~ 5만엔의 보조금을 지원하고 농업용 중장비도 빌려준다는 계획이다. 농경지로 다시 전환된 토지에서 산출된 농산물은 정부가 판매를 돕고 판매원의 임금도 정부가 지원한다는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그러나 지방 인구가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런 대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대도시권에서도 출산난민 출현

고치(高知)현의 스사키(須崎市)시 주민들에게 임신과 출산은 두려운 일이 됐다. 인구 2만5000여명이 사는 중소도시인 스사키시의 연간 출생자가 150명 이하로 줄자 산부인과가 모두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다. 임신부들은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면 1시간 정도 떨어진 고치(高知)시의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가야 한다. 스사키시청 관계자는 "고령자를 위한 병원들은 있지만 산부인과가 없어 주민들의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저출산으로 산부인과가 급격히 줄면서 분만실을 갖춘 병원을 찾아 이곳저곳을 떠도는 '출산난민'이 60만명을 넘어섰다는 게 일본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출산난민이 지방도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도쿄 권에 있는 요코스카(橫須賀)의 경우 산부인과 부족 등으로 연간 300여명이 다른 지역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일본 정부에 따르면 산부인과를 갖춘 병원은 1990년 2189곳에서 최근엔 1294곳으로 줄었다. 일본의 의사 수는 30년 전보다 2배 늘었지만, 의대생들이 환자가 줄어드는 산부인과를 기피하면서 산부인과 의사 수는 10% 감소했다. 지방자치선거에서 산부인과 유치가 선거공약이 될 정도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종합병원에 소아과 의사 2명

저출산으로 어린이 환자가 줄면서 소아과를 설치한 병원도 1990년 4119곳에서 2853곳으로 급감해 어린이 응급의료 시스템에도 구멍이 뚫리고 있다. 미에(三重)현 북부 구와나(桑名)시의 부모들은 요즘 불안하기만 하다. 유일한 종합병원인 야마모토(山本)종합병원의 소아과의사 2명 중 1명이 출산으로 육아휴가를 가는 바람에 담당의사가 1명으로 줄어 야간 응급진료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구 46만명이 넘는 히로시마현 후쿠야마(福山)시에 있는 4개 종합병원도 소아과 의사들이 번갈아가며 휴일 및 야간 응급진료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소아과 의사 몇 명이 정년퇴직하는 바람에 진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다. 인구감소 지역은 소아과·산부인과 뿐만 아니라 종합병원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 저출산이 '의료 공백지대'를 일본 곳곳에 만드는 것이다.

초등학교 이어 중학교도 문 닫아

어린이가 줄어들면서 초등학교의 폐교도 잇따르고 있다. 1980년 2만4945개였던 초등학교는 최근 2만2000개로 줄었다. 지방뿐만 아니라 도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도쿄 외곽의 다마(多摩)뉴타운은 1970~80년대엔 학생 수 증가로 학교 증설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저출산 영향으로 학생 수가 급감, 6개 초등학교가 통폐합됐다. 폐교된 학교는 노인복지시설로 바뀌었다.

어린이 감소로 향후 10년 내에 1000개의 초등학교가 추가로 폐교될 전망이어서 주변에 초등학교가 없는 지역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폐교는 시차를 두고 중학교·고등학교 폐교로 이어진다. 중학교는 1990년 1만1275에서 작년 1만814개로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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