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의 정신건강을 위한 부모의 역할

해마다 8, 9월 무렵이 되면 연례 행사처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고3 수험생들이 클리닉을 찾는다. 소위 "고3병", "입시병"이라고 불려지는 것들이다.

배나 머리가 아프고 피곤하다. 눈이 침침하거나 어지럽고 예민해진다. 입맛이 떨어지고 소화가 안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거나 깊은 잠을 못 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답답하다. 몸에 이상이 있는지 염려해서 검사도 받아보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다. 만사가 귀찮고 공부에 의욕이 없어진다. 심한 경우에는 등교를 거부하고 가출을 하거나, 자살을 생각한다.

수학능력 시험을 앞두고 발생하는 이런 문제들은 "시험 불안"과 연관된 경우가 많다. 사실 적절한 정도의 학업 성취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안이나 긴장은 꼭 필요하다. 불안이 너무 없으면, 공부하고자 하는 동기가 없어져서 준비를 소홀하게 만들므로 학업성적이 떨어진다. 반면에 지나치게 높은 불안은 공부하는 능력을 오히려 떨어뜨려서 학업성취를 방해한다. 즉, 적당한 정도의 불안과 긴장이 좋은 성적을 위해서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개 "고3병"은 성적이 부진하거나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를 느끼는 경우, 내향적이며 소심하고 지나치게 꼼꼼한 성격의 학생에서 많이 발생한다. 앞으로의 진로 선택에 갈등이 많은 경우, 부모나 자신이 일류 집착증에 빠진 경우, 부모-자식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불화가 많은 경우에서도 자주 본다. 정신적 질환이나 만성 신체질환으로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도 "고3병"을 앓기 쉽다.

"고3병"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 정신과에서는 개인상담을 통해서 긴장을 풀기 위한 근육이완 훈련, 인지-행동 수정 치료, 학습 기술 훈련 등을 시행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약물을 처방한다.

특히 효과적인 것은 인지-행동 수정치료인데, 쉽게 설명하자면 공부나 시험에 관련된 수험생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고쳐주는 것이다. 일단 필요한 것은 "나는 이번에 최선을 다해서 준비할 만큼했다.", "내가 아는 것만 다 쓸 수 있다면 나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학습과 관련된 긍정적인 생각을 심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할 수 없다". "이번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하면 내 인생은 끝장이다"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을 "이번 시험이 힘들기는 하지만 나는 잘 해 낼 수 있다", "인생은 한번의 시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오던 식으로 준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는 식으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부모 상담도 꼭 필요하다. 이 시기의 부모는 공부 전에 합리적으로 계획하는 습관을 길러주며, 공부할 때는 집중해서 하고 안 할 때는 철저히 공부로부터 벗어나는 것, 즉 "놀 때는 실컷 놀아라"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자녀의 신체리듬에 맞는 생활 주기를 파악하는 것도 필요한데, 올빼미 스타일은 밤에, 종달새 스타일은 이른 아침에 공부하게 조언해 준다. 토요일 오후는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으로 배정해서 규칙적인 운동이나 여가 활동을 적극적으로 격려해주는 것이 좋다. 일주일 중의 하루는 늦잠을 자서라도 일주일간의 피곤을 해소시켜 준다. 부모 스스로가 TV시청을 자제하고 집안을 책보는 분위기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부모의 욕심이나 희망사항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녀의 특성이나 적성에 맞는 진로 지도를 해야 한다.

사실 공부를 하는데 있어서는 지능이나 기억력과 같은 학습능력 외에도 최상의 집중력, 정서적인 안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부에 대한 동기가 필요하다. 부모로서는 어떻게 해서 자녀에게 공부하겠다는 동기를 자발적으로 불러일으킬 것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부모들이 수험생 못지 않게 불안해하는 경우도 많다. 부모 자신의 불안을 줄여야 자녀도 안정되게 공부할 수 있다. 그리고 자녀의 학습에 문제가 발생한 경우 상담교사와 꼭 상의하고, 필요하다면 적절한 치료기관의 도움을 조기에 받아야 한다.시험불안/학습, 어떻게 도울 것인가?

* 소아청소년정신건강클리닉에서 개인적인 학습목적으로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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