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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T

다이클로로다이페닐트라이클로로에테인 (Dichlorodiphenyltrichloroethane, DDT)

1874년 오스트리아의 오트마 자이들러 박사에 의해 처음 합성되었다. 이후 1939년 스위스의 파울 헤르만 뮐러가 살충제로서 효능이 있음을 발견하였고, 이는 살충제의 원료였던 제충국(벌레를 쫓는 국화)의 대체재로 사용되었다. 파울 헤르만 뮐러는 이 공로로 1948년 노벨생리학·의학상을 수상하였다.

DDT에 살충 효과가 있음에 밝혀질 당시에는 그냥 획기적인 살충제 정도로 알려졌다. 살충효과도 좋았는데다다 오래 가는 지속성도 좋았기 때문이다. 이 지속성은 나중에 해로움이 알려진 뒤에는 오히려 큰 문제점이 되었다.

위험성

동물 체내의 지방과 결합해서 점점 축적된다. (생물농축)

퇴출

DDT가 살충제로써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 암탉의 산란율이 감소하는 등 가축에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으며, 동물실험 결과 DDT를 주입한 개는 에디슨 병(Addison's disease)에 걸린 사람과 매우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1945년에 나온 한 논문( Case, R. A. M. (1945). Toxic effects of DDT in man. British medical journal, 2(4432), 842.)은 DDT가 인간에게 확실히 유해하다는 결과를 내었는데, 우연히도 같은 해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철 카슨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DDT의 유해성을 소개했다.

1962년에 레이철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라는 환경운동서적에 의해 직격탄을 맞고 전세계적으로 사용량이 대폭 감소하였다. 침묵의 봄은 DDT가 발암물질이며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그 결과 DDT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몹쓸 화학물질로 추락했으며 1970년대를 전후로 대부분의 국가에서 사용금지 약품으로 규정되었다.

싼가격 때문에 저개발국에서 말라리아 퇴치에 널리 사용되던 DDT가 국제적인 지탄을 받아 사라지자, 중남미나 인도 등 아시아 국가들에서 다시 말라리아가 창궐하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DDT를 금지약품으로 지정한 1972년 이후 4년 만인 1976년 말라리아 발생 보고는 전 세계적으로 231% 증가했다.

대한민국에서 1979년 이후 사용이 완전히 금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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