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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 출처: 엔하위키- 김유정(CC BY-NC-SA 2.0)

김유정(金裕貞, 1908년 1월 11일 ~ 1937년 3월 29일)

대한민국소설가. 강원도 춘천 태생으로 소설 소낙비(황순원소나기가 아님)로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1935년에 등단했다.

생애

집안은 꽤 뼈대있는 양반 가문으로1), 고향에서는 꽤 명망있는 지주였다.2) 하지만 신분이 낮은 소작인들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금광에도 몰두했던 모양. 이러한 농촌 생활과 금광 사업3)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썼고, 특히 농촌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크게 호평받았다. 이상은 특히 김유정을 존경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급사와 형 유근의 방탕한 생활로 집안이 크게 기울어져 경성과 춘천의 집을 팔고 공장에서 일하는 누나에게 얹혀 살다가 폐결핵으로 인해 등단한 지 2년 만인 1937년에 29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하지만 이 2년동안 그가 남긴 작품은 무려 30여 편이나 되므로, 그의 열정이나 문학적 재능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죽기 1~2년 전에 미친듯이 글을 썼는데, 단편작들은 대개 이 때에 만들어졌고, 장편은 결국 미완성으로 끝났다. 심지어는 번역본까지 한 권 만들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불태운 집필 활동.

김유정은 구인회의 회원으로 소설가 겸 시인 이상과는 친한 친구였는데 서로 병고로 고통을 겪자 "이상(시인)"이상과 김유정은 '동반자살하기로 약속했으나 김유정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 후 "이상(시인)"이상은 자신의 소설에서 "유정! 유정만 싫다지 않으면 나는 오늘밤으로 치러버리고 말 작정이었다. 한 개 요물에게 부상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하는 불우의 천재가 되기 위하여 죽는 것이다. 유정과 "이상(시인)"이상 - 이 신성불가침의 찬란한 정사·····." 라고 표현할 정도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욕구가 보다 더 강했던 김유정에 의해 무산됐다고 하나, 그 두 사람은 실제로 1937년 3월 29일에, 이상은 4월 17일에 죽어 18일을 간격으로 함께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인 1937년 3월 18일에 친구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는 처절함 그 자체다.

필승아.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있다. 그리고 맹열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달리 도리를 차리지 않으면 이 몸을 다시는 일으키기 어렵겠다. 필승아.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의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 있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필승아. 내가 돈 백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 다시 탐정 소설을 번역해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 되고 흥미있는 걸로 두어 권 보내 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50일 이내로 역(譯)하여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 하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필승아.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그 병을 위하여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몸이다. 돈이 생기면 우선 30마리를 고아먹겠다. 그리고 땅꾼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10여 마리 먹어 보겠다. 그래야 내가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궁둥이가 쏙쏘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필승아.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오.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오. 기다리마.

농촌 배경의 토속적 작품이 많다 보니 착각하기 쉬운데, 당대 다른 젊은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시크한 도시인이다. 당시 신문에 실린 문답 등을 보면 그야말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라는 말이 어울리는 수준.

소리계에서 유명한 기생4) 박녹주 명창에 대한 짝사랑 일화가 유명하다.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는 박녹주 명창을 보고 첫 눈에 반해 찍사랑을 하게되지만 자신은 이미 결혼한 몸이고 너는 학생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다니고 있던 학교까지 자퇴하고 박녹주를 찾아가지만 다시 거절당하자 빅녹주의 집에 가서 대성통곡을 하고 나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박녹주가 이혼을 하고 순천의 갑부인 김종익과 재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절망에 빠져 폐인으로 살다가 늑막염에 걸리게 된다. 그 이후에도 몸이 좋아지면 구애편지를 써서 선물과 함께 박녹주의 집으로 보내고는 했지만 모조리 반송당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너의 운수가 좋았노라. 그 길목에서 너를 기다리기 3시간, 만일 나를 만났으면 너는 죽었으리라.' 라는 내용의 혈서를 보내고 일주일 뒤 박녹주의 가마를 스토킹 한뒤 "네가 원하는 것은 결국 돈이었구나"고 윽박을 지르고 도망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에 식겁한 박녹주는 사건이 벌어진 다음날 김유정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서 “저는 나이도 돈도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당신에게 마음이 가지 않았던 것도 제 잘못입니까?” 라며 타이르고 돌려 보냈는데 그것이 김유정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한다.5)

실연한 직후 시인 박용철의 여동생 박봉자의 글이 자신이 쓴 라는 글 옆에 실려있다는 이유로 얼굴도 모르는 박봉자에게 우발적으로 수십 통의 연애 편지를 쓰는 등6)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방 안에 틀여박힌 채로 폐인생활을 하다가 고향 춘천으로 낙향한다. 이 후 춘천에서 들병이7)들과 어울리고 금광 사업에 몰두하는 등8) 두문불출하다가 몸을 해치게 되고 그 결과 늑막염이 악화되어 폐결핵으로 발전하고 치질까지 걸려서 실레마을에서 요양을 하게된다. 요양 도중 김유정은 실레마을의 낙후된 환경을 목격하고 야학을 설립, 교사가 되어 주민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얼마 못가서 야학이 강제로 해체되자 춘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게 된다.

서울로 돌아온 김유정은 셋방살이를 전전하면서도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구인회에 가입한다. 하지만 구인회는 친묵단체 성향이 강했기에 실질적인 수익은 전무했고 결국 폐결핵이 악화되어 경기도 광주에 있는 공장에 여급으로 일하고 있던 큰누나의 집에 얹혀 살게 된다. 공장에서 돌아온 김유정의 누나는 병으로 누워 있는 김유정에게 "내가 고생해서 벌어 온 돈이 아깝다. 네 놈은 돈은 못 벌어 오고 집에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냐!|며 히스테리를 부렸으며 이 광경을 목격한 김유정의 절친한 친구였던 안회남9)이 "차라리 밖에 나가서 소설을 쓰는것이 어떻겠니?" 하고 제안하여 김유정은 비로소 본격적으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소설 집필을 시작한지 채 3년이 못 가서 폐결핵으로 요절하고 만다.

김유정은 평생동안 박녹주를 잊지 못했는지 김유정의 장례식을 치룬 직 후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안회남이 술에 만취한 채로 박녹주의 집에 나타니서 "당신이 박녹주요? 친구는 당신이 죽인거요. 죽을 때 까지 당신을 잊지 못하고 갔소!"라며 원망했다고 한다.

주요 작품

유명한 작품으로는 금 따는 콩밭, 봄봄, 동백꽃, 만무방등이 있다.

적잖은 사람들이 일제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암울하기 그지없는 조선의 현실을 외면하고 연애소설이나 썼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인 금 따는 콩밭의 경우 물질에 눈이 먼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봄봄 등에서는 농촌문화와 전통문화 속 부조리를 해학적으로 풍자한다. 이로 미루어 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전혀 없지는 않다. 봄봄이나 동백꽃은 당시 농촌의 계급 관계가 은연 중에 잘 드러난다. 남자 주인공보다 우월한 집안의 여자 주인공10)과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해야 하는 남자 주인공의 구도가 바로 그것. 만무방에선 제 논의 벼를 떳떳이 거두지 못하고11) 몰래 훔쳐 거둬야 하는 비참한 상황이 나온다. 만무방의 경우 처음엔 그리 비극적으로 와닿지 않으나, 한 번 더 생각하고서야 글 속의 심각함을 눈치채게 된다.

대체적으로 작품에 해학적 요소가 많고, 구수한 사투리와 아름다운 순 한국어 단어를 잘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글이 상당히 재밌다. 봄봄의 장인과 나의 고자되기 뿐 아니라 만무방, 금따는 콩밭, 동백꽃 등도 실감나는 서술로 읽는 맛이 좋다.12)

또한 그의 단편작 속 등장인물들은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봄봄의 장인도 실존인물이다.

봄봄동백꽃의 경우가 모의고사에서 자주 출제 되는데, 내용에 대한 이해를 물어보는 문제보다는 되려 순 우리말의 뜻풀이는 묻는 문제가 더 많다.

기념 사업

작품의 주 배경이 되는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 김유정 문학촌이 조성되어 있다. 기념관 외에도 소소한 재밋거리들이 많고, 잘 짜여진 행사도 자주 하고 있으니 근방에 갈 일이 있다면 들러 보자. 촌장은 우상의 눈물로 유명한 소설가 전상국.

이 김유정 문학촌에서 5분만 걸어가면 이 사람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이 나온다. 원래의 이름은 신남역으로, 마을 주변이 김유정 관련 관광지로 조성되다 보니 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역명까지 바꿔 단 케이스.13) 인물 이름을 역 이름으로 사용한 한국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2010년 12월 21일 경춘선 전철 개통과 함께 바로 옆에 새로 지은 한옥 스타일의 역사로 옮겼다.

[[한국적 라이트 노벨| 조선 신문학]]의 선구자?

대표작인 동백꽃의 경우는 순수 국산 츤데레물. 봄봄의 경우에는 리얼 고자되기. 두 작품 다 지금 읽어도 재밌다. 또한 동백꽃의 경우 점순이란 캐릭터가 요즘 러브 코미디 라노베에 즐겨 나오는 츤데레 기믹이 다분하고, 내용도 답답하도록 눈치없는 나와 민폐를 끼치며 주위를 빙빙 도는 점순이란 구도가 해학과 맞물려 매우 유쾌한 연애소설이 되었다. 점순이의 매력(?)은 점순이 항목과 동백꽃 항목을 참조.

눈치없이 그럴 사람은 없다고 생각되지만, 김유정 작가는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하던 시대의 인물이다.

  • 출처: 엔하위키- 김유정(CC BY-NC-SA 2.0)
1)
조상이 현종의 비 명성왕후(숙종에게 그 지랄맞은 성격을 물려준 그 어머니 맞다)의 아버지 김우명이다. 거기에서 계보는 김우명의 넷째 손자 도택(道澤)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2)
그 유명한 만석꾼 집안이다. 할아버지가 사마좌임금부도사(司馬座任禁府都事)를 지냈다. 아버지도 사마좌임금부주사(司馬座任禁府主事)를 지냈다.
3)
전자는 봄봄과 동백꽃 등, 후자는 금 따는 콩밭.
4)
당시 기생은 술 자리에서 판소리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현재로 치면 연예인 포지션이었다.
5)
이런 일을 낭만으로 보아 주던 예전 사회라서 가능한 에피소드들이다. 행여 이런 행적을 그럴 듯하게 여겨 요즘 시전했다가는 스토커 되기 딱 좋으니 양식 있는 위키러들은 당대의 기막힌 연정 정도로만 여기자.
6)
물론 모두 반송당했다. 박봉자는 같은 해 김유정 자신도 알고 지낸 사이였던 문학평론가 김환태와 결혼한다.
7)
농촌에서 병에 담긴 술을 갖고 다니며 농민들에게 술을 파는 여성. 물론 술만 팔지는 않았다.
8)
금광에 몰두하다가 그나마 남아 있던 돈을 다 써 버린 김유정은 이후 말그대로 빈털털이나 다름없는 여생을 보낸다.
9)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금수회의록으로 유명한 안국선의 아들이다. 김유정이 닭과 뱀을 고아먹고서야 살아날 것이다. 라고 하였던 처절한 편지가 바로 안회남에게 보낸 편지였다. 이 편지에는 안회남의 초명이었던 필승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후 월북했다.
10)
대표적으로 마름집 딸 '점순이'와 소작인의 아들 '나'.
11)
수탈을 막기 위해서.
12)
이는 앞서 서술된 박녹주의 영향으로 보인다. 생전 김유정은 박녹주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던 흥보가의 대사를 외울 정도로 즐겨 들었다고 한다.
13)
역 이름이 지역명과 맞지 않았던 탓도 있다. 개통 당시에는 신남면이었으나 얼마 후 신동면으로 바뀌면서 지명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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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KB 김유정.txt · 마지막으로 수정됨 2018/02/22 12:00 (바깥 편집) V_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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