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만 개요

  • 수 도 : 타이페이(Taipei)
  • 인 구 : 약 2,300 만명
  • 면 적 : 약 3.6만 ㎢
  • 기 후 : 아열대성 해양 기후
  • 주요 민족 : 대만성인(84%), 대륙본토(14%), 원주민(2%)
  • 언 어 : 북경어(공용어), 대만어
  • 종 교 : 불교 & 유교 & 도교(93%), 기독교(4.5%), 기타(2.5%)
  • 시 차 : 대만과 우리나라의 시차는 -1시간
  • 날 씨 : 대만의 현재 날씨는 약 16-20도 정도, 우리나라의 봄~초여름 날씨와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음
  • 전 압 : 대만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110V. 대부분의 호텔 욕실에서는 면도기용 어댑터나 다중 콘센트가 준비되어 있으나, 구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 개별적으로 멀티어탭터를 준비하는게 좋다.
  • 기 타 : 대만은 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거나 침을 뱉으면 NT$600의 벌금을 물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현지기후

출발 하는 4월초의 경우 우리나라의 봄~초여름 날씨(평균 20-25도로 예상)에 해당하나 이상기온으로 갑자기 기후가 변경될 수 있으니 출발전 현지 기후를 체크하여 의복을 준비하시면 됩니다.(비가 많이 오는 지역으로 소형우산 필요!)

대만환전

대만에서는 대만달러(TWD) 사용합니다. 달러(TWD)=38.11원/2012년 03월 기준, 1달러(USD) = 29.41달러(TWD) US$는 관광지 등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는 세계공용카드인 VISA, MASTER 등이 사용가능합니다. 포터나, 룸팁은 통상적으로 USD$로 지불되므로 1$짜리 5장정도를 준비해주세요!

주민

타이완 주민은 크게 3개의 집단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오스트로네시아어족계 원주민(약 1.7%), 명·청시대에 주로 중국 푸젠 성 및 광둥 성으로부터 이주 정착한 한족계 본성인(약 85.3%), 그리고 1945년 일제 패망 이후에 중국 대륙 각지로부터 이주한 외성인(外省人, 약 13%)이 있다. 한족계 본성인은 일상에서 주로 쓰는 중국어 방언에 따라 민남어를 사용하는 복노인(약 73.3%)과 객가어를 사용하는 객가인(약 12%)으로 세분하기도 한다. 국공내전에서 패한 국민당정권이 타이완섬으로 피신하면서 정권을 따라 들어온 외성인들이 모든 방면에서 주도권을 쥐고 본성인들을 억압하면서 1947년에 2·28 사건이 일어나는 등 저항이 있었다.(1988년에 타이완 출신인 리덩후이가 총통이 될 때까지 43년간 외성인 중심의 국민당정권이 계속되면서 정치,경제 등의 모든 부분에서 여전히 외성인 출신들과 그 후손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타이완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주로 미국인 등 서양인이다. 그밖에 일본인, 말레이인(필리핀 출신 주민 등), 베트남인, 몽골인, 티베트인 등이 있다.

역사

타이완의 역사는, 16세기 이전 시기,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 정씨 왕조 시기, 청조(淸朝) 시기, 일본제국(日本帝國) 시대, 중화민국(中華民國) 시기로 크게 나눈다.

http://www.hoteltravel.com/kr/taiwan/guides/travel_tips.htm

일본의 식민지배 역사

대만의 역사는 그들이 일본을 차라리 좋아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대만 중앙연구원 부연구원인 저우완야오(周婉窈) 박사가 쓴 ‘대만-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에 따르면 대만의 식민지 경험과 일본의 유화정책은 독립에 대한 열망을 흐려지게 했다. 게다가 1945년 해방 이후 대만으로 건너온 장제스 국민당 정부(당시 대만 국민의 13%에 불과했던 소위 외성인·外省人)의 철권통치는 일본의 그것보다 더 무자비했다. 이런 사실은 대만 본성인(本省人)은 물론이고 원주민들까지 반대급부로 일본의 식민 통치를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개가 가고 돼지가 왔다’는 말이 나오고, 정치·사회적 차별 등 일본 식민정치의 폐해들이 잊혀질 정도였다. 이를 저우 박사는 “역사가 그들을 복잡한 방식으로 조롱했다고 봐야 맞을 것”이라고 했다.

13%의 사람들에게 학대당한 87%의 분노는 1947년 2월 27일 외성인 출신 단속원들이 밀수한 담배를 팔던 대만 본성인을 구타하고 이 과정에서 본성인이 그들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발발한 2·28사건에서 극에 달했다. 국민당 정권은 나라의 안정을 이유로 본성인과 원주민 수만 명을 죽였다(자료에 따라 1만∼10만명).

게다가 1930년 우서 사건 이후 일본은 원주민들의 재무장 및 항일투쟁을 막기 위해 철저히 원주민 친화·동화 정책을 썼다. 대만은 일본이 최초로 만든 식민지였으므로 이곳에서의 성공은 대외 과시용으로도 중요한 일이었다. 일본은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이 수십 년간 같은 지역에 머무르며 원주민과 친분을 쌓도록 했고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공학교에서는 일본 순사가 교사직을 맡게 해 오랜 시간을 거쳐 스승과 제자의 정이 쌓이게 했다. 손준식 중앙대 사학과 교수는 “우서 사건 이후 일본이 원주민에게 편 동화 정책은 겉으로는 가장 부드러운 정책이었지만 그 이면은 자신의 부모, 친척을 모두 죽인 일본인에 대한 비판마저 사라지게 만든, 그들을 마음껏 미워할 자유마저 사라지게 만든 가장 잔인한 정책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대만 원주민들의 현재 모습은 일제 통치의 가장 잔인한 결과물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영화 ‘시디그 발레’에서 모우나 루도는 “우리는 진짜 남자다. 용감하게 싸우다 죽어 오직 용감한 영혼만이 입장이 허락되는, 조상들이 있는 하늘의 집으로 걸어간다”라고 말하며 숲 속 나뭇잎보다 많았다던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무지개 전사들은 하늘의 집에서, 역사가 만든 모순을 그대로 안고 살아야 하는 슬픈 후예들을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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