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사성어

징전비후(懲前毖後)

징계할 징, 앞 전, 삼갈 비, 뒤 후

지난날을 징계하고 앞날을 삼가다. 이전에 저지른 과오(過誤)에서 교훈을 얻어 뒷날에는 일을 신중하게 한다는 뜻

周(주)나라 武王(무왕)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아들 成王(성왕)이 왕위를 계승했다. 그러나 성왕은 아직 나이가 어려 그의 숙부 周公(주공)이 攝政(섭정)을 하게 되었다. 주공은 무왕이 殷(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는데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러자 무왕의 사촌형인 管叔(관숙)과 蔡叔(채숙)은 주공을 시기한 나머지 주공이 성왕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기 위해 역적 모의를 하고 있다고 헛소문을 퍼뜨렸다. 그리고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紂王(주왕)의 아들 武庚(무경)과 손잡고 반란을 일으켜 성왕을 몰아내려 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성왕은 시 한 수를 지어 이 반란을 기어코 평정하겠다는 뜻을 다졌다.

이 시가 바로 '시경'에 수록된 '周頌(주송)'중 '小毖篇(소비편)'으로 그 첫구절이 '予其懲而毖後患(여기징이비후환)'으로 되어 있다. 지난날의 과오를 뼈아프게 새기면서 앞으로 다시는 다른 환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계한다는 뜻.

'지난날의 과오'란 한때 성왕이 간신들의 모함하는 말을 믿고 주공을 멀리했던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懲前毖後(징전비후)는 이 시 구절을 따서 후세 사람이 만든 것.

반란은 주공의 노력으로 진압되고 무경과 관숙은 처형당하고 채숙은 멀리 유배(流配)의 길을 떠났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西厓(서애) 柳成龍(유성룡)이 전쟁을 회고하면서 쓴 '懲毖錄(징비록)'은 바로 懲前毖後에서 따서 붙인 제목. 왜란을 교훈으로 삼아 스스로 힘써 다시는 그런 前轍(전철)을 밟지 말자는 뜻이다.

[출전]《詩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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