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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 撰(두찬)

杜:말을 두. 撰:글지을 찬

杜默(두묵)이 지은 작품. 典據(전거)가 확실하지 못한 저술이나 틀린 곳이 많은 작품을 말함

두묵은 宋(송)나라 때 문인으로 그가 지은 시는 당시의 大家(대가) 歐陽修(구양수)의 작품과 함께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두묵은 흔히 규칙에 어긋난 시, 다시 말하면 韻律(운율)이 맞지 않는 시를 지었는데 그 破格(파격) 때문에 인기를 끌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격식에 맞지 않는 詩文을 가리켜 [두묵의 작품](杜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송나라의 왕무가 지은 [야객총서]에 나오는 말이다. 왕무는 이 책에서 이렇게도 적고 있다.

"일반적으로 杜는 '그 땅에서 나는 토산물'을 가리키는데 杜자가 붙은 말은 좋지 못하거나 변변치 않다는 뜻으로 쓰인다. 예를 들면 좋지 못한 밭이나 농장을 杜田(두전) 杜園(두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자기 손으로 빚은 묽고 맛없는 술을 杜酒(두주)라고 한다. 그러니까 杜撰도 변변치 못한 작품이란 뜻이 된다"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두묵보다도 전의 문인으로 진종(眞宗) 때에 칙명에 의해 편찬된 [문원영화(文苑英華)]의 편찬자 중 한사람인 성도(盛度)가 인종(仁宗) 때 죽은 장지백(張知伯)의 비문을 썼을 때 상사가 물었다.

"이건 누가 쓴 것인가?"

"도(度)가 찬했습니다."

그러자 일동이 폭소했다.

왕무는 이것으로 보아, "도가 찬했다"는 말을 듣고 웃는 것은 두찬을 연상했기 때문이며 이 두찬이라는 말이 예로부터 있었던 증거라는 것이다.

'두찬'의 어원에 대해서는 이밖에도 여러 가지 異說(이설)이 있다. 한가지만 더 들어보자.

송나라 석문렬이 쓴 [상산야록]에서 도교의 경전인 [道藏(도장)]에 관해 언급한 대목에도 [두찬]이란 말이 나온다.

"[도장[ 5 천여권 중 [도덕경] 2권만이 진본이고 나머지는 蜀(촉)나라의 두관정이 쓴 僞作(위작)이다. 이때부터 하찮은 위작을 '두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 식이어서 '두찬'의 어원도 두찬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杜撰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나라 사정이나 역사를 잘못 기록한 [외국 두찬]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출전]《野客叢書(야객총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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