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사성어

병위사지(兵爲死地)

兵:군사 병. 爲:할 위. 死:죽을 사. 地:땅 지

전쟁에 목숨을 건다. 일을 할 때엔 온 힘을 기울인다.

이 말은 조(趙)나라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조사(趙奢)라는 이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이다. '병(兵)은 사지(死地)다'라는 것은, 전쟁은 목숨을 던질 각오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는 본시 시골에서 조세를 거두어들이는 말단 관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워낙 청렴결백하고 공평무사하여 평원군의 귀에까지 들어가데 되었다. 그는 발탁된 후에도 온 힘을 경주하여 공은 세워 마복군(馬服君)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병략가로서도 이름이 높은 그에겐 조괄(趙括)이란 아들이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병법을 공부했는데 천하의 병략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 어느 날 부친과 병략에 대해 토론을 벌였는데 오히려 조사가 쩔쩔 맬 정도로 그의 식견은 탁월했다. 우쭐해 하는 아들을 보며 조사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묵묵부답인 남편을 바라보는 그의 아내는 아들의 청산유수 같은 달변에 몹시 만족해하면서도 남편의 행동에 섭섭해하였다.

"여보, 그럴 수가 있어요. 이렇게 똑똑한 아들에게 칭찬 한마디쯤 해 줄 수 있잖아요."

답변을 떨구는 남편의 얼굴은 너무나 냉담했다.

"전쟁이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 '병사위지(兵爲死地)'요,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 말이오. 그러나 우리 괄이란 놈은 말뿐이오. 이론만 번지르르하여 실속이 없어요. 만약 저 녀석이 대장이 되어 싸움에 나선다면 일을 크게 그르칠 것이오."

안타까워하는 아내의 얼굴을 흘낏 바라보고 나서 조사는 한숨을 길게 몰아쉬었다.

훗날 효성왕 7년에 조나라에 문제가 생겼다. 상당(上黨)을 합병했던 일이 화근이 되어 진나라와 전쟁이 일어났다. 그때에는 명장 조사는 이미 타계하고 없었다. 진나라의 모략에 걸려 명장 조사의 아들 조괄이 나섰다. 그는 부친의 우려대로 입술만 달싹이는 탁상공론가였다. 그는 섣불리 공격을 개시하여 단숨에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잃고 말았다.

[출전]《史記》《염파·인상여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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