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합(野合)

신문, 잡지 등에서 ‘야합(野合)’이란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좋지 않은 목적을 위해 힘을 합친다는 뜻이다. 국회, 정당 같은 정치판에서 ‘날치기’란 말과 함께 쓰인다. 지난해 국회에서 2011년도 예산안 통과 때도 그랬다. 야당은 여당을 비난했 고 당정이 야합했다고 쏴붙였다. 그럼 ‘야합’이란 말은 어디서, 어떻게 나왔을까.

야합은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에서 처음 나온다. ‘사기’는 ‘십팔사략’과 함께 지혜를 밝혀주는 중국의 역사서다. 한나라 시대(漢代) 사마천이 오랜 전설시대 때 부터 한대 초기까지의 역사를 적은 것이다. 연대별로 사건을 기록하는 편년체(編 年體)가 아니고 본기와 열전을 중심으로 한 기전체(紀傳體)로 돼있다. ‘야합(野合)’은 들 야(野)자에 합할 합(合)자가 결합된 단어로 이처럼 오랜 역사를 가졌다. 이 단어는 중국의 성인인 공자와 얽혀 있다.

‘사기’에 “숙량흘(叔梁紇)은 안씨(安氏) 딸과 야합해서 공자를 낳았다(野合而生)”고 돼있다. 숙량흘은 공자의 아버지이고 안씨는 어머니다. BC(기원전) 551년 공자가 태어날 때 아버지는 일흔 이 다 된 노인이었다. 반면 어머니(안징재)는 파릇파릇한 이팔청춘(16세)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원조교제 수준을 넘어선 나이차이다. 역사가들은 이 두 사람의 결 합을 무슨 글자로 써야할지 난감해했다. 더욱이 그 땐 예법상 공자 어머니는 정실(정식 부인)로 인정받을 수 없었다. 그 무렵 3번째 결혼은 인정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자 아버지 숙량흘은 본처 와 후처가 있었다. 공자 어머니 안징재는 숙량흘의 세 번째 아내가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공자는 서출이 아니다. 숙량흘에겐 아들이 있었지만 발을 저는 지체장 애인이라 집안종사를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숙량흘에겐 집안의 대를 이을 반듯 한 아들이 필요했고 공자 어머니와 만나 공자를 낳았다. 공자 아버지는 많은 딸 (10명)들과 몸이 성치 못한 맏아들이 있었으나 튼실하고 영리한 자식을 얻기 위 해 나이 70이 넘어 안징재란 16살의 소녀를 얻어 뜻을 이룬 것이다. 손녀딸 뻘의 새 아내를 얻은 공자 아버지는 귀족 중 가장 낮은 계급인 무사였다. 추읍(鄒邑)의 대부라는 하위관직을 맡고 있었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이 두 사람의 결합을 좋지 않게 봤다. 도덕적인 문제를 들어 비판하는 논조로 ‘야합’이란 단어를 처음 만들어 썼다. 글자의 본뜻은 온당 치 못하게 둘이 정을 통했다는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일방으로 덮쳤다’거나 ‘강 간했다’에 해당된다. 중국의 일부 고전학자들은 “공자는 사생아”란 말까지 한다. 남녀가 결혼해서 애(공자)를 낳긴 했으나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는 부부사이에 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야합은 ‘들판에서 통정하다’ ‘혼인할 나이를 넘겨 결혼한 부부관계’ ‘정식 부부사 이가 아닌 남녀가 정을 통함’으로 해석된다. 그 시절 중국에선 여자 49세, 남자 64 세가 넘어서 결혼하는 것을 야합(野合)이라 불렀다. 따라서 ‘야합’이란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땐 이런 말의 뿌리를 잘 알고 해야 전하고 자 하는 원래취지를 벗어나지 않게 된다. 잘못 쓰면 엉뚱한 얘기가 되고 오해까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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