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장애(Obsessive-Compulsive Disorder)

과거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홍수, 지진 같은 자연재해나 죽음이나 질병 같은 상황들을 겪으면서 미지의 두려움을 느끼고 이를 벗어나려는 나름대로의 행동을 했다. 예를 들면 지진이 나는 경우 두려움을 느끼면서 '하늘이 노해서 지진이 일어난다'고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하늘을 달래는 제사 같은 의식을 시행하게 하고 그런 의식을 시행하지 않으면 불안을 경험하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강박증 환자에게서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면서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이에 대처하기 위한 방법으로 독특한 행동으로 의식을 수행한다. 예를 들면 하루에 손을 20번씩 씻는 환자는 ‘이 세상이 세균으로 득실거리고 오염되어 있다’고 자신만의 비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손을 씻지 않으면 병에 걸릴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이러한 불안을 벗어나기 위해 손을 씻는 행동 즉, 의식을 수행하게 된다. 하지만 손을 남들보다 자주 많이 씻는다고 강박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단지 손을 자주 씻는 습관일 수도 있다. 습관은 자신도 모르게 행동하게 되어 지적을 받으면 그 행동을 의식하고 그만둘 수 있는데 반해 강박증은 행동을 의식하고 있어 알면서 행동하게 되고 만약 강박적인 행동을 못하게 한다면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는 점에서 다르다.

강박증은 강박적인 사고와 강박적인 행동이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강박사고는 원하지 않은 생각들이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르는 불쾌한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불안을 유발하게 되고 이런 불안을 없애기 위해는 강박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 강박증에는 여러 가지 양상들이 있다. 이미 언급한 손 씻는 경우처럼 지나친 청결에 대한 강박증, 가스 불이나 문고리를 반복해서 확인하는 것처럼 점검하고 확인하며 반복해서 의심하는 강박증, 자신의 신체적 질환이나 외모에 대해 과도하게 염려하는 신체적 강박증, 물건을 정확한 위치에 바르게 두어야만 하는 균형이나 정확성에 대한 강박증,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지 모른다는 공격성에 대한 강박증, 사회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근친상간적 생각이나 성도착적인 생각 같은 성적인 강박증, 쓸데없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모으는 축적에 관한 강박증 등이 있다.

여러 학자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강박증의 원인을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 명확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세로토닌(serotonin)이라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의 저하가 강박증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이론이 가장 우세하다. 그래서 현재 강박증에 사용하고 있는 약물들은 세로토닌의 기능을 증가시키는 것들이다. 하지만 개인의 기질과 가정환경 등의 사회문화적인 요소도 중요하기 때문에 치료도 약물치료와 더불어 각 개인에 따른 정신치료와 사회문화적인 접근도 필요할 것이다.

약물치료는 최근에는 새로 개발된 세로토닌 특이 재흡수 차단제 (SSRI)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약물치료와 더불어 인지-행동치료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박적 성격장애를 동반한 경우에는 정신치료가 효과가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여러 가지 치료에도 불구하고 효과가 없는 경우 뇌의 특정부위에 신경회로를 차단하는 미세한 뇌수술을 시행하기도 하고, 뇌의 일부분에 자기장을 걸어주는 방법을 실험적으로 시도하기도 한다.

강박증은 혼자 의지로 이겨내는 증상이 아니라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뇌의 질환이다. 그런데도 강박증 환자가 발병 후 치료를 받으러 오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어 안타깝다. 이 글을 통해 강박증에 대해 보다 정확히 이해하게 되어 증상의 조기 발견과 조기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