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

진화심리학은 사회생물학을 더 발전시킨 분야로, 진화심리학자들은 먼 옛날 우리 조상이 수렵, 채집사회에서 살면서 수없이 어려운 환경들에 부딪혀 가며 그것에 대해 대책을 세워놓은 것이 우리 인간의 뇌에 컴퓨터처럼 다양하게 프로그램화 되어 저장되어 있다고 본다. 가장 주요한 논점들은 생존과 번식인데요,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남녀는 각각 자신의 후손을 세상에 퍼뜨리기 위해 (번식) 여러가지 진화된 심리기제들을 발달시켜왔다.

남자의 성책략

진화론적으로 보면 남자에게는 수많은 단기관계가 유리하다. 한번 임신하면 9달 동안 후손을 퍼뜨릴 수 없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하루에도 수차례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자는 왜 결혼하는가 하는 문제는 예전부터 아주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남겨져 왔지요.

이는 진화를 거치면서 결혼이라는 것이 일시적인 연애보다 더 이익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장래를 약속하지 않으면 여자가 성관계를 허락하지 않는 일이 많았다거나, 아버지가 돌보지 않으면 자식의 생존과 번식이 위협받고 따라서 결국 유전자가 퍼뜨려지지 않는다는 현실에 적응한 결과일 수 있다. 게다가 바람둥이라는 소문이 퍼지면 여자들이 피해서 결국 번식 면에서 손해였을 것이고요.

결혼할 여자를 고르는 기준은 하룻밤을 위한 상대를 고르는 기준과 다를 수밖에 없다. 짧은 연애에서는 쉽게 성관계를 맺을 수 있고 아이 잘 낳을 여자를 알아내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장기관계에서는 번식력 외에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느냐 하는 품성 또한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여자의 번식력은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는데, 두 가지 명백한 단서가 바로 젊음과 건강이다. 이 특성들이 외모와 체격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남자는 그렇게나 여자의 외모를 따지는 것이다. (푸석푸석한 머릿결, 거칠거칠한 피부, 동태같은 눈, 메마르고 갈라진 입술 같은 것들이 건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가슴과 엉덩이가 큰 여자가 건강한 아이를 낳고, 잘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도 입증된바 있고 또한 나이 많은 여자보다 젊은 여자일수록 건강한 아이를 낳는다는 것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실이다.)

장기관계를 맺는 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여자가 낳은 아이가 정말 내 아이냐라는 확실성을 확보하는 문제이다. 다른 수컷포유류에 비해 인간 남자는 자식들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이 여자 저 여자와 자식을 만들지 않고 한 아내에게 충실했는데, 알고보니 남의 자식을 자기 자식인줄 알고 키웠다더라, 하게 되면 두 말할 것 없이 엄청난 손실이기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내의 간통은 인류의 진화사에서 남자가 겪는 가장 심각한 적응문제가 되었다. 아내가 낳는 자식이 자기 자식인지 확인할 길이 없었으므로, (적어도 지금과 같은 과학기술이 없는 옛날 환경에서는) 일단 정숙한 여자를 찾아야 하겠죠. 따라서, 젊음과 건강은 피부, 머리결, 몸매 등 외적 단서들로 비교적 쉽게 추리할 수 있지만, 정숙함과 모성 같은 내적 특질들은 다양한 행동 관찰에 의지해 추리해야 한다.

여자의 성책략

여자는 생존 가능성이 큰 (유전자를 가진) 짝을 골라 자녀를 얻어서 잘 키워야 한다. 자식을 위한 투자, 즉 "부양투자"(parental investment)가 남자보다 엄청나게 크므로 자신과 자녀를 위한 짝의 보호와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유전자"를 가졌으며, 힘세고 용기있고 착한 짝을 골라야 하는 것이 여자의 생존법칙이 되었다.

능력과 재산, 힘, 용기, 사회 지위, 야망, 너그러움, 부지런함, 정서적 안정 등 여자가 좋아하는 남성 특성들은 바로 남자가 여자와 자녀에게 오랜 기간 동안 보호와 보살핌을 줄 수 있는가, 혹은 주려고 하는가를 말해주는 특성들이다. 때문에 이러한 남자의 보호와 보살핌은 여자에게 "사랑"(또는 commitment)으로 받아들여지고, 그래서 남자가 자기를 사랑하는가 아닌가에 대해 여자(연인/아내)가 그렇게나 신경쓰는 것이다. 즉, 함께 있는 중에도 계속 사랑을 확인하려고 하는 여성의 특성들이 진화심리학적인 입장에선 이렇게 이해되고 설명되는 것이다.

헌데 이러한 능력 및 태도특성들은 행동 관찰로부터 추리되어야 하는, 내적인 성향 또는 상태들이다. 쉽게 말하자면 짝의 행동만을 보고 그 짝의 성격 등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짝의 잠재적인 "장래성"도 계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장기 관계를 원하는 척하면서 접근해 가지고 성관계만 맺고 떠나버리는 남자들의 속임수에도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평판도 관리해야 하고요. (여러 남자를 사귀어서 "헤픈" 여자라는 소문이 돈다면 당연하지만, 치명적이겠죠.) 자신의 독특한 상황도 고려해야 하는데, 예컨대 주변에 돌봐 줄 친척이 없는 여자에게는 아기를 잘 돌보는 남자가 더 가치 있죠.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보고 이같은 내면을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위험하고도 험난한 고난이도 과제들을 훌륭하게 해낸 여성들의 조상, 즉 짝을 구하고 짝의 부정을 막고 자신이 생존하기에 충분한 혜택을 주면서도 이익이 되는 재화를 제공해 준 그런 남자에게만 성적 접근을 허용하여 성공적으로 자식을 얻고 키워 낸 여자들의 후손이 바로 우리가 되는 것이다.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 다양한 과제들에서 성공하는 책략, 프로그램들을 현대여성들도 가지고 태어난다.

남녀의 갈등

여기까지 살펴보면 남자는 "양"(여러 여자와의 단기관계)을, 여자는 "질"(한 남자와의 장기관계)을 추구한다.

즉, 남자에게는 가능한 한 많은 여자를 임신시키는 것이, 여자에게는 우수한 남자와 장기적 관계를 맺는 것이 번식성공에 유리하다.

그러나 성 책략은 성별에 따라 다를 뿐 아니라, 같이 자녀는 기르는 장기관계를 원하느냐 아니면 하룻밤의 성 관계나 짧은 연애를 원하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것은, 책략이란 말이 의식적으로 계획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목표지향, 문제해결을 강조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변치 않는 사랑과 끝없는 헌신, 장기관계를 원하는 여자와, 최소의 투자로 많은 상대와의 쉬운 성관계를 원하는 남자는 서로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마음에 드는 짝을 유혹하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가졌다고 또는 줄 수 있다고 확신시켜야 한다.

따라서 남자는 능력과 재산을 과시하고, 사랑과 헌신을 맹세하며, 용감성, 자신감을 내세우게 되고요, 반면 여자는 단연 외모가꾸기에 집중하며 내숭, 콧대 세우기 등으로 다른 남자에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리하여 남녀의 엇갈림이 생기게 된다. 남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혼을 원하는 체하고, 자신감과 지위, 재산을 속여서 말하며, 여자들은 외모를 가꾸고 일시적 성관계에 관심이 있는 체해서 남자를 유혹한 다음 장기관계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꾸민다. 즉, 여자가 "성적인 사기꾼"이라면 남자는 "감정의 사기꾼"인 셈인 것이다.

장기관계에 들어간 여자는 남자가 자녀를 떠나지 않고 계속 사랑과 헌신으로 지키고 보살펴 줄 것을 원하는 반면, 남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기 자식(유전자)을 위해 희생하고 있다는 확신이다. 이러한 차이는 질투의 원인에서도 반영된다.

연구에 따르면 남자는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가졌을 때, 여자는 배우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여 그 사람에게 시간이나 재산을 바칠 때 더 질투한다고 하다. 즉, 질투라는 심리구조는 남자에게는 아버지임을 확신하는 적응문제이고, 여자에게는 약속(commitment)을 확인하는 적응문제에 대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짝짓기의 남녀차이를 해석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우선 무엇보다도 앞 글에서 나온 차이는 평균차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능력을 더 많이 따지고, 남자가 여자보다 외모를 더 많이 따지는 것이지, 모든 여자와 남자가 그러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든지 능력을 따지는 남자, 외모를 따지는 여자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위에서 설명한 차이가 관찰된다는 것이다.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더 키가 크고 힘이 세지만, 반대로 남자보다 크고 힘센 여자, 여자보다 작고 약한 남자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두번째로, 앞글에서 본 남녀차이는 문화규범과 사회제도, 즉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남자보다 여자에게 "혼전순결"을 강조하며 여자보다 남자의 외도에 훨씬 관대하다. 또 취업과 승진에서 여자를 차별하기 때문에 짝짓기에서도 남녀의 행동과 선호에 차이가 올 수 밖에 없다.

세번째로, 행동책략들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배후의 정서ㆍ동기 기제들이라는 사실이다. 쉽게 말하자면, 남자는 여자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상대와 성관계를 맺기 원하고 그러한 공상들을 하는 것이다. 진화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욕망"이다. 행동들 자체는 경험에 의해 학습되고, 욕망표현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 자체와 내면에 있는 욕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

진화된 내적 기제들 때문에 목표지향적 전술과 책략들이 나오지만, 생존과 번식 성공의 목표는 보통 의식되는 목표나 의도가 아니다.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결혼했다 했을 때, 사랑해서 결혼한다고 생각하지, 나는 [번식 가치]를 따져봤을 때 이 사람이랑 결혼하는 것이 이익이야. 그러므로 나는 결혼하는 것이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네번째로, 진화적 설명이 성행동의 성차를 도덕적으로 정당화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즉, 남자에게 씨를 퍼뜨리려는 "수컷의 본능"이 있다는 것은, 남자는 아무 여자나 붙잡고 강간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상과 욕망은 죄가 없지만 행동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누구를 죽이고 싶다고 해서 비난을 받을 수는 없지만, 실제로 협박을 하거나 살인을 저지른다면 그 행위에 책임을 지는 것처럼요.

또한 남자는 이렇다, 여자는 저렇다는 것을 기존의 불평등과 부조리들을 변할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성책략이 원래 다름을 인정해도 전혀 다른 "교육"을 할 수 있다.

Benard와 Schlaffer(1990)는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 자체가 아니라, 남녀가 자기 성별의 특성을 어떻게 이용하고 다른 성별의 사람들의 특성에 어떻게 적응하느냐 하는 것이 현재의 권력/지위 차이를 가져온다고 봅니다. 만약 남녀차이가 생물학적으로 그렇다, 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달고 기름진 음식을 먹음으로써 몸 속에 지방을 축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므로 비만, 성인병에 걸리도록 그냥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는 소리가 되니까. 어떠한 사실을 세세하게 알고 있다는 것은 시대, 문화, 환경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남자/여자로서 타고난 성향과 욕망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으면 자기의 이성과 행동을 더 잘 통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우리 몸의 특성을 알고 비만을 예방하기 위해 달고 기름진 음식을 절제해서 먹는 것처럼 말이다.

  • 참고문헌 : 성격심리(하), 홍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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