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로아스터교

궭조로아스터교궭(Zoroastrianism)는 고대 이란의 종교다. 중국에서는 불을 숭상한다 해 배화교라 불렀다.

1)

조로아스터교(Zoroastrianism), 마즈다교(Mazdaism) 혹은 배화교(拜火敎)의 창시는 기원전 1800년에서 기원전 640년경으로 다양하다.

이 종교는 중동의 박트리아 지방에서 자라수슈트라(=조로아스터)에 의해 세워진 종교이다. 기원전 600년경에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를 통해 오늘날 이란 전역에 퍼졌으며 기원전 5세기에는 이미 그리스 지방에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교는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sda)를 중심으로 선과 악의 질서 및 세계를 구분하는게 특징이다.

사람들이 조로아스터교에 대해 착각하는 가장 본질적인 내용은, 아후라 마즈다와 앙그라 마이뉴라는 각각의 존재에 의존해 펼쳐지는 것이 이 세계인데 왜 유일신교라고 보느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앙그라 마이뉴 또한 아후라 마즈다의 창조물인지라 아후라 마즈다와 동급의 존재가 아닌 피조물에 불과하며, 또한 페르시아가 숭배한 대상은 오로지 아후라 마즈다뿐이었다.

  • 즉,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사탄이 하늘에서 떨어져 악한짓을 하며 설치고 돌아다닌다 해서 유대교를 유일신교라 부르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듯, 조금 더 강한 사탄이라 할 수 있는 앙그라 마이뉴가 존재한다고 해서 조로아스터교가 유일신교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앙그라 마이뉴와 동급의 존재는 스펜다 마이뉴다. 아후라 마즈다가 만들어낸 쌍둥이로 각각 빛과 어둠을 상징하는 존재. 후대에 오면서 스펜다 마이뉴의 존재감이 사라지면서 변화된 것이다.

교리와 의의

조로아스터교는 흔히 을 숭상한다 하여 배화교로 알려져 있지만, 불을 숭상 하는것이 아니라 조로아스터교도가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하루 5번의 예식에 쓰이는 성스러운 불을 소중히 하는것이다. 불 뿐만이 아니라 창조자의 피조물인 땅, 불, 물, 사람의 '마음'까지도 더럽히지 않으려 한다.

그런고로 당시 유행하던 짐승을 죽여 피로 땅을 더럽히는 제사와 사람의 시신을 땅에 묻는것, 식물성 마약에 취해서 마음을 더럽히는 것 모두 금기시 한 것이다.

불을 소중히 여기는 다른 이유로는 사산조 시기에 조로아스터교식의 '성상파괴'가 일어나서 예술로 쓰이는 것외에 종교 의식에서 성상을 쓰는 것을 금지하고 불을 사용하도록 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2)

"조로아스터교"라는 이름은 창시자인 조로아스터에서 유래한다. 조로아스터(Ζωροάστρης, Zōroastrēs)는 당시 서양이었던 그리스식 발음이며, 현대 영어발음도 여기서 유래했다. 고대 페르시아어에 해당하는 아베스타어 발음으로는 자라투스트라(Zaraϑuštra)에 가깝다. 독일어 식인 "짜라투스트라"로도 알려져 있다. 조로아스터의 이름의 뜻은 '낙타를 잘 치는 사람'으로 당시 지배계층3)의 사제계급이 었던 조로아스터가 유목민 출신이 었다는것을 의미한다.

  • 조로아스터 - 그리스식
  • 짜라투스트라 - 독일식
  • 자라투스트라(Zaraϑuštra)

주신 아후라 마즈다를 섬기는 종교로 거울의 양면으로 해석되는 "이원론적 일신교 종교"이다. 성경도 비슷한 묘사를 사탄에게 하는데, 욥기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욥기에서의 묘사는, 조로아스터교 처럼 악의 원리를 확실히 하나의 존재로 두는 것이 아닌, 하느님의 권능 하에 사탄이 초장부터 묶여있는 듯한 묘사다.] 빛의 원리에 필적하는 어둠의 원리를 인정한다.

그러나 둘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동등한 것은 아니고, 악과 어둠은 선과 빛에게 결국 패배하게 되어 있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적극적인 자유 의지로 단순히 믿는것에 그치지 않고 악에 맞서서 투쟁할것을 주문한다.(영적전쟁 개념과 다소 비슷하다.) 또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신화의 여러 신들을 모두 받아들였으므로 신은 여럿 있지만, 결국 최종적이고 궁극적인 만물의 주인, "주신"은 오직 아후라마즈다/오르마즈드 뿐이다. 조로아스터교 내의 다른 신들은 유일신인 아후라마즈다를 돕는 보조적인 신이자 선한 영으로, 기독교의 천사들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다시 말해 조로아스터교는 비록 고대의 다신교적 성격이 일부 남아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일신교적 성격이 강한 종교이다.

현재 남아있는 아베스타를 보면 평화와 화합, 도덕적 생활을 통한 번영을 중시여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당수의 에피소드가 조로아스터의 방문을 받은 마을이 거지처럼 못살다가 조로아스터의 지도를 받고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목축민과 유목민적인 성향이 많이 반영된 유대교와는 달리, 농민과 도시민의 성향이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이 점은 베다 종교(=브라만교, 힌두교)와 대비되는 경향이기도 하다.

조로아스터교에서 강조하는 신심은 예언자 조로아스터가 강조한 세가지의 좋은 행동, 즉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하며 살 것을 강조한다. 애초에 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면, 즉 아후라마즈다의 길을 따른다면 좋은 생각이 곧 좋은 말을 낳고, 다른이들에게 좋은 말을 하면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 좋은 행동을 하며 살 수 있다고 보는것인데 이러한 행동들이 바로 악을 물리치는 무기가 된다고 본다.

대충 이렇게 알려져 있지만 워낙 오래된 종교라서 시대에 따라 교리나 사상에 변화가 많고, 이단 종파나 분파도 많다. 특히 이슬람의 침략 이후 신자들의 수가 격감하여 그 전통이 매우 약화된 탓이 크다. 조로아스터 교는 (조로아스터 교 이전의) 고대 페르시아의 토착 신앙과 구분이 되기는 하나 일부 신들은 그 연장선 상에 있고, 향후 수백년 간 나타난 여러 다른 종파와도 모호하게 구분된다.

역사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생몰연도는 확실치 않으나, 대략 BC 1500년~ 1300년 경에 이란 동부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레니즘 시대와 파르티아의 지배를 거치면서 아나히타나 미트라 등 보조 신격들을 숭배하는 변종 분파들이 널리 퍼졌다. 특히 미트라 숭배는 헬레니즘 세계를 거쳐 이후 로마 제국까지 전파되기도 했다.

이 추세가 반전된 것이 사산 왕조의 등장이다. 사산 왕조는 그 이전 400년 동안 이란을 지배한 파르티아인들의 유목민적 전통과 느슨한 봉건제도, 타 종교나 문화(특히 헬레니즘)에 대한 호의적 태도 등을 비난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 건설을 주창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로아스터교를 국가권력 강화와 사회 통합의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였다.

이에 따라 사산 왕조 초기 조로아스터교는 정통 교리와 경전을 확립하는 작업, 국가권력과 연계된 관료적 성직기구의 정비 작업 등을 진행하며 다시한번 국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 제국의 정통 교리에 반하는 마니교, 마즈다크교 등이 등장하여 세력을 늘리거나 고위 성직자들을 견제하려는 황제들의 지원을 받기도 했지만, 결국 이단으로 몰려 탄압당했다.

조로아스터교의 몰락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했던 사산 왕조의 멸망과 궤를 같이 한다. 아나톨리아와 유럽 지방을 지켜낸 동로마 제국과 달리 이란은 모든 영토가 이슬람 세력에 정복당했고, 사산 왕조의 국가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입지는 크게 약화되었다.

처음에는 아랍 정복자들도 이란 지역을 안정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토착 유력자를 포섭해야 했으므로 조로아스터교는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교나 힌두교 토속신앙과 달리 이슬람에 교리상 유대교,기독교도와 마찬가지로 조로아스터교도 일신론에 해당하는 고등종교 이기 때문에 원칙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 었다. 8~9세기 정도만 해도 중세 페르시아어로 기록된 조로아스터교 관련 문서들이 꽤 남아 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 내부에서도 이단취급 받던 마즈다크교는 시아파와 합세해서 제국에 반기를 들었기에 탄압받았다.

그러나 우마이야 왕조의 아랍인 우선주의, 비무슬림에 대한 추가 인두세 부과, 그리고 비무슬림을 차별하지 말라는 공식적 입장과 상관없이 이루어진 비공식적 차별 특히 가혹한 세금과 더불어 조로아스터교도와 무슬림 형제가 있을경우 조로아스터 교도는 상속을 받을 수 없다는 등의 조치로 인하여 인해 점차 이란에도 무슬림 개종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한 처음에는 고등종교로 인정하는 조치와 반대로 무슬림들은 점점 조로아스터 교도들을 불을 섬기는 이교도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편견이 조로아스터교가 배화교로 불리는데 일조 하기도 했다. 750년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 왕조를 무너뜨릴 때 이란의 비 아랍계 무슬림인 마왈리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9~10세기 정도가 되면 조로아스터교는 완전히 소수 종교가 된다. 11세기 셀주크 제국을 위시한 이란 지역의 튀르크화와 순니파 세력의 강화 역시 조로아스터교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사산 왕조 멸망 이후 이란이 지속적으로 이슬람화되자, 조로아스터교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피난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 중 인도 지역으로 피난한 사람들은 아래 서술할 "파르시"가 되었고, 중국으로 피난한 사람들에 의해 배화교, 혹은 명교라는 이름이 알려졌다.

다른 종교에 미친 영향

유대교, 기독교

유대인들의 귀환과 성전 재건축을 허락한 페르시아의 정복왕 키루스 2세가 조로아스터교도였다.당시 페르시아는 영토 뿐 아니라 경제,문화,군사,체제 정비 등 다른나라들을 압도하는 오리엔트 세계의 패자로 확고한 위치에 있었던 시기로 유대인들 역시 종교 뿐 만 아니라 문명 전반에 페르시아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4)

다른 종교에 미친 영향도 상당하다. 대표적으로 동정녀에 잉태되어 태어날 구세주, 종말의 때에 일어날 최후의 심판, 조로아스터가 광야에서 정진할 때 앙그라 마이뉴에게 시험받았다는 내용, 조로아스터의 탄생 때 그를 방문했다는 마기(Magi) 등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에 미친 영향력은 실로 엄청나다. 하지만 가장 큰 것은 그 자체. 예컨대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사탄은 본래 '고발자'라는 뜻으로, 인간의 신앙을 시험하여 신을 조롱하는 천사로 여겨지고 있었는데5),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의 영향을 받아 신에 맞서는 악마로 바뀌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는 달리 19세기의 학자인 제임스 다메스테터(1849~1894)는 오히려 유대교가 지배민족인 페르시아의 사상에 영향을 끼쳐 완성된 것이 조로아스터교라고 주장했다. 조로아스터의 출몰의 시기는 대략 기원전 600년 전후이고, 그 이전에 유일신 사상을 완성한 유대교가 페르시아에 역으로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의 메시아 사상이 역으로 조로아스터교에 영향을 미쳤다고 했으며, 메시아 예수와 비슷한 내용이 조로아스터교에 등재되기 시작한 시기가 되려 기독교보다 느리다고 보았다. 참고

문제는 정작 유대교의 경전인 토라는 바빌론 유수 시대에 성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네부카드네자르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예언자 다니엘의 존재는 역사적 교차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시기 이전까지 모세 5경은 물론 구체적인 신학적 견해도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2004년에 바빌론 유수보다 한 세기 정도 이전 시기의 유대 경전이 일부 발견되어 경전 자체는 부분적으로나마 이미 존재했던 가능성이 있다. 참조

오히려 구약에서 등장하는 용어 중에선 페르시아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도 눈에 띄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알이다.

브라만교, 힌두교

현대에는 아무래도 현대 사회의 관심 분야이기 때문에 유대교, 기독교와의 영향이 가장 주목을 끌지만, 아무래도 조로아스터 교와 좀 더 연관성이 깊으면서도 대립성이 강한 종교는 인도 (India)의 종교. 브라만교힌두교이다.

재미있게도 조로아스터 교와 브라만교는 궭서로의 신과 마가 뒤바뀌어 있다궭. 조로아스터 교의 아후라 마즈다(Ahura)는 인도 신화의 아수라(Asura)와, 조로아스터 교에서 저급한 악마로 보는 다에바(Daeva)는 곧 인도의 신의 데바(Deva) 신족과 동일한 기원을 가진 것으로 보고 있다.

옛 인도-이란인 (즉, 아리아인)의 원시적인 종교에서 이미 이 같은 신족의 분화가 존재했고, 이란에서는 아후라-아수라 계통의 신앙이 강화되었으나 인도에서는 데바-다에와 계통의 신앙이 강화되면서 이런 대비가 나타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사실 데바를 우위에 놓는 인도 신화에서도 아수라는 여전히 대단히 강하고 정의로운 존재로 나타나는 때도 많이 있고, 데바 신들은 어째 하는 짓이 정말 비열하고 악랄(…)하다보니 거의 악당에 가까운 짓을 할 때이 많다.(…)

현대의 조로아스터교

현재도 적게나마 신자가 있다. 이란, 인도 (India), 중국을 합쳐서 약 10~30만 명 정도이며 가장 많이 분포하는 곳은 인도다. 이란에서는 2011년 인구조사 결과 2만5천명 가량의 신자가 있다고 하며, 중부 야즈드(Yazd) 지역이 조로아스터교의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다만 워낙 고생이 심해서 성전 아베스타조차도 극히 일부분밖에 남지 않았다. 대략 전성기의 20분의 1정도 분량(…). 성경으로 예를 들자면 신약하고 구약 중 한두 편만 남고 죄다 없어졌다. 1906년의 페르시아 헌법 규정에서는 의회 의석 중 1석을 반드시 조로아스터교도에게 할당하도록6) 되어 있었으며, 이는 이슬람혁명 이후인 지금도 유효하다.

호메이니는 조로아스터교를 그리 좋게 안 봤으나,과거 대페르시아를 상징하는 점이 있어서 팔레비 왕 시절에 공존되었고 1971년 페르시아 건국 기념일에도 조로아스터교인들이 대표같이 나오던 점이 있었다. 당시 이걸 이단행위라고 욕하다가 페르시아를 욕하는 저 식히는 매국노라고 엄청난 비난을 받고 부랴부랴 아니 잘못 생각했어요! 변명을 하며 평생 페르시아를 부정하지 않는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야했던 호메이니였으니 조로아스터를 함부로 까다가 자칫하다간 페르시아를 까는 것으로 봤기에 그냥저냥 공존하고 놔두었다.차가운 무슬림남자 하지만 조로아스터교에게는 관대하겠지그러나 차별과 박해는 존재했고 2000년 대 이후에 망명하는 조로아스터교도들도 있다고.. 조로아스터인들은 소수이긴 하지만 과거 페르시아가 아랍을 지배하며 호령할때 종교가 조로아스터인데 왜 현대에는 정작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이 아랍인이슬람에 정복당했다는 거냐?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이란 항목에도 나오듯이 이란에서는 대신 소수계열인 시아파를 믿으며 아랍과 대립하잖아…이렇게 말하기도 하지만.

인도 (India)로 피난한 조로아스터교도들은 소수민족 집단인 파르시(페르시아인이라는 의미)가 되어 잔존하게 된다. 이들은 인도의 지배종교인 힌두교와 대립하지 않기 위해 교리에 일부 규정을 더하였는데, 현재 그 중에 문제가 되는 것이 "파르시와 파르시의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 만이 파르시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시뮬레이션에 의하면 이 규정을 계속 지킬 경우 현대 사회에서 파르시는 2, 3세대 안에 거의 소멸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때문에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하여 개혁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파르시들은 주로 상업에 종사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한 경우가 많은데, 현재 인도 최대의 재벌그룹 타타 그룹을 소유한 타타 가문이 파르시이다.7)프레디 머큐리가 파르시였으며 조로아스터교 신자였다. 생전에 머큐리는 자신의 뿌리를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노래가 불처럼 화끈한것이 그때문인가 ?

시체로 불이나 땅을 더럽히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화장을 기피하고, 조장(鳥葬)을 선호하고 있다. 문제는 환경오염으로 조장에 쓰이는 대머리 독수리가 점점 수가 줄어들고 있어서, 이 풍습도 위협받는 중(…). 시대의 변천에 따라 개고기 식용에 대한 입장 차이도 변화했다.

그 밖에 서구권에서는 일부 조로아스터교를 빙자한 뉴에이지 교단이 활동하고 있다. 물론 실제 조로아스터교와 계보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2015년 들어 이라크 쿠르드족 지역에서 조로아스터교 신자가 늘고 있다. 다에쉬와의 전투로 인한 민족주의 부흥으로 쿠르드족 사이에서 이슬람에서 조로아스터/야지디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10만명이 개종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기존의 전 세계 조로아스터교도 숫자의 절반 이상 되는 엄청난 수다.

1)
조로아스터교의 가장 유명한 심볼(( 수호천사 '프라바시(faravahar)'를 묘사한 것. 고대 페르시아에서 자주 쓰였기 때문에 페르시아의 심볼로도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호메이니 치하의 이슬람 공화국에서조차 국가적 상징으로 허용되었다.
2)
출처 - 페르시아 : 고대 문명의 역사와 보물
3)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하여 기원전 10세기경에 이란 지방을 정복한 아리안 족이다.
4)
파르시가 유대인 바리새인의 어원이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실제론 기원전 2세기 하스몬 왕조 시절 헬레니즘의 유입에 맞서서 이를 거부하며 유대전통을 지키는 무리라는 정체성으로 등장함.
5)
구약성경 욥기에 이러한 측면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양반이 이걸 허락하는 바람에 수많은 욥의 자식들과 하인들, 가축들이 끔살의 향연에 휘말리고 말았으니…
6)
아르메니아인, 아시리아인, 유대인도 마찬가지 적용을 받음
7)
의외겠지만 재규어와 랜드로버도 타타모터스 소유다. 타타모터스 뿐만 아니라 타타그룹 자체가 농업에서 항공우주 산업까지 안하는게 없을 정도로 인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역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