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무호남 시무국가

김대중 전대통령이 지난 2006년 10월 29일 전남 도청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라는 말을 적었다. 그는 잠시 후 “방명록을 다시 가져오라”고 한 뒤 ‘이 충무공 왈(曰)’이란 말을 추가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한 말이란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 말을 쓴 이후 많은 호남인들이 이 말을 즐겨 쓰고 있다. 호남이 없었으면 조국도 없었다… 지난 대선 때 각 진영에서 호남을 찾을 때마다 이 말을 하며 호남인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충무공의 이 말씀은 그리 해석되는 문구가 아니다.

주지하듯이 충무공은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가 아니라 정확하게 ‘약무호남(若無湖南) 시무국가(是無國家)’라고 했다. 이 말의 출처는 ‘발해고(渤海考)’의 저자 유득공(柳得恭)이 1795년(정조 19년) 왕명에 따라 편찬한 이순신 장군의 문집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끝부분 서간문 모음집에 실려 있는 충무공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이다. 보낸 날짜는 1593년(선조 26년) 7월 16일이다.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음의 글을 보자. 서애 유성룡의 서애문집에 나오는 말이다.

이 글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소개되어 있다.

然其小邦形勢所在, 則全羅、慶尙二道, 最爲關重, 蓋慶尙門戶, 而全羅府藏也。 無慶尙則無全羅, 無全羅則雖有他道, 小邦終無所資以爲根本之計。 斯乃賊所必爭, 而我所以守之。

<그러나 소방의 형세를 말하다면 전라·경상 2도(道)야말로 가장 중요하니, 경상도는 문호(門戶)이며 전라도는 부장(府藏)이기 때문입니다. 경상도가 없게 되면 전라도가 없게 되고 전라도가 없게 되면 다른 도가 있어도 소방은 끝내 의거하여 근본을 삼을 만한 계책이 없게 되니, 이곳이야말로 왜적이 반드시 쟁취하려는 곳으로서 우리가 그곳을 지키려고 하는 까닭입니다.>

이 글을 보면 무경상즉무전라(無慶尙則無全羅)란 말이 나온다. 이 말을 어떻게 풀이해야 하나?

문구 하나만 달랑 떼 놓고 해석하면 "경상도가 없었더라면 전라도도 없었을 것이다" 라는 해석도 가능하고 "경상도가 없으면 전라도도 없을 것이다"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둘 다 가능한 풀이이고 틀린 점은 없다. 한문은 그 자체에 과거형이니 현재형이니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문은 문맥의 흐름 속에서 이해해야만 그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는 "경상도가 없으면 전라도도 없을 것이다"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 경상도를 잘지켜야 전라도를 잘 지킬 수 있고, 전라도를 잘지켜야 나라를 잘 지킬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하는 게 전체 문맥상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게 올바른 한문의 해석 방법이다.

약무호남시무국가는 단순히 호남을 방어하지 못하면 국가를 지킬 수 없다는 말일 뿐이다. 이 문장은 "호남이 없었더라면 국가도 없었을 것이다" 가 아니라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을 것이다" 라고 해석해야 한다.

무경상즉무전라(無慶尙則無全羅)가 경상도가 없으면 전라도가 없다, 즉 전라도를 보전하기 위해서 경상도를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이듯이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는 전라도가 없으면 국가가 없다, 즉 국가를 보전하기 위해서 전라도를 잘 지켜야 한다는 말일 뿐인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말은 호남의 우국충절을 표현했다든가 호남의 공로를 예찬했다든가 하는 등의 그런 의미는 결코 아니다.

실제로 이순신 장군의 편지 원문을 문맥에 따라 모두 읽어 보도록 하자.

…… 竊想湖南國家之保障(절상호남국가지보장) 若無湖南是無國家(약무호남시무국가) 是以昨日進陣于閑山島以爲遮海路之計(시이작일진진우한산도이위차해로지계)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是以) 어제 한산도에 진을 옮겨서 치고 이로써 바닷길(海路)을 차단할(遮) 계획을 세웠습니다….

약무호남시무국가 다음에 나오는 是以란 단어는 "그래서, 그러므로, 그런 까닭에" 등의 뜻으로 해석되는, 즉 앞의 말이 뒷말의 근거가 되는 연결 접속사이다. 예를 들면, 兪得罪, 笞常痛, 今母之力, 不能使痛. 是以, 泣 (죄를 지어 매를 맞을 때 늘 아팠는데, 지금 어머님의 기력이 아프게 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江海所以能爲百谷王者 以其善下之 (강과 바다가 모든 계곡의 왕인 것은 아래에 처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是以 欲上民 必以言下之 (그런 까닭에 백성들 위에 서려고 하면 반드시 말을 낮추어야 하고) 欲先民 必以身後之 (백성들 앞에 서려고 하면 반드시 몸을 뒤에 두어야 한다)

是以라는 연결사가 붙는 문장의 해석상 이순신은 호남마저 잃으면 국가를 지키지 못할 것이란 판단을 했으며 "그래서" 호남을 지키기 위해 한산도로 진을 옮겨 가서 바다를 차단할 생각을 했다고 보는 것이 분명히 옳다. 문장의 바로 직전의 내용은 "저는 괴로운 진중에 있으면서도 나라의 은혜가 망극하여 지위가 정헌(正憲)에 오르고 보니 감격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등의 약무호남시무국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귀여서 고려할 바가 아니다.

실제로 이순신이 이 편지를 썼던 1593년 7월 16일은 같은 해 6월 29일의 제2차 진주성 전투의 결과 진주성이 무너진 직후의 시점이다. 왜적은 육로와 해로를 통해 전라도로 물밀듯이 진격할 계획이었으며 이순신은 견내량을 앞에 두고 해로를 막아 전라도로 향한 왜군의 진격을 막을 계책을 세웠던 것이다.

(이순신은 한산도로 진을 옮겨 왜적이 호남으로 가는 길을 차단할 전략을 세웠다)

이순신장군의 이 서간문은 "충무공 이순신 전서"(박기봉 편역, 비봉출판사) 제2권 78페이지에 그 전문이 번역되어 소개되어 있다. 전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 전하께서 쾌차하시게 된 것은 신하와 백성들의 경사(慶事)이므로 기쁜 마음 어찌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난리를 치른 후 그리운 마음 간절했는데, 뜻밖에 이번 하인 편으로 이달초에 띄워 보낸 편지를 받아 급히 뜯어서 읽어 보고 위로 받음이 평상시보다 배나 되었는데, 하물며 종이에 가득히 실린 말씀이 정중하기까지 하니 오죽하겠습니까. 가을바람이 들판으로 불어드는 이때에 살피건대 기거(起居)에 한결 더 조심하고 계시는지 일일이 다 말씀 여쭐 길이 없습니다. 저는 괴로운 진중(陣中)에 있으면서도 나라의 은혜가 망극하여 지위가 정헌(正憲)에 오르고 보니 감격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이므로 만약 호남이 없다면 나라도 없을 것입니다(竊想湖南國家之保障 若無湖南是無國家). 그래서 (호남을 지키기 위해) 어제 한산도로 진을 옮겨서 치고 바닷길을 가로막을 계획을 하였습니다. 이런 난리중에도 옛정을 잊지 않고 멀리까지 위로해 주고 또 겸하여 여러가지 선물까지 받고 보니, 모두가 진중에서는 진귀한 물건 아닌 것이 없어서 깊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에야 전쟁을 끝내고 평소퍼럼 따라서 같이 놀고 싶어하던 정회를 싫컷 풀어볼 수 있을는지요. 막상 편지를 쓰려고 종이 앞에 앉으니 공연히 슬픈 생각만 간절해집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마음이 산란하여 이만 씁니다.』

-계사(1593년) 7월 16일 -<답지평현덕승서(答指平玄德升書)>

위 원문에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이순신 장군은 호남을 지키는 것은 전략상 매우 중요하므로 호남을 지키기 위해서 한산도로 진을 옮겨서 쳤다고 말을 하고 있다.

약무호남시무국가는 전략상 요충지로서 지정학적으로 호남 방어가 매우 중요하다뜻임.